‘대한민국 설계자’ 김붕준·조소앙… 임시정부 법통 세운 두 거인

 

법치·독립·민주주의 싹을 틔웠던 임정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법통 계승’ 명시

 

김, 의장으로서 헌법 제정·정부수립 기여

조, 삼균주의 사상 입각 제헌 기반 다져

 

‘건국 강령’ 등 자료 국가등록문화유산

국권 침탈부터 광복까지 독립운동 헌신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은 기미독립선언서를 통해 조선이 일제 치하에 있는 게 아닌, 독립된 자주 국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선언은 구호에만 그칠 순 없었다. 항일 의지가 전국적으로 번졌던 그해 4월, 중국 상하이에 모인 독립 운동가들은 지금의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을 설립했다. 임시의정원을 중심으로 어떻게 자주 독립 국가를 만들지 머리를 맞댔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정해졌고,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졌다.

이후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은 일제 침략에 항거하고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일을 주도했다. 법치와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싹 틔웠다는 의미도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하는데, 임시정부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19년 4월 개설된 임시정부·임시의정원은 1945년 8월 광복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26년여간 임시정부·임시의정원의 활동상은 여러 사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임시의정원 의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이 남긴 자료들이다. 임시정부가 제정한 법규와 임시의정원 개최 일람표 등이다. 마찬가지로 임시의정원 의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으로 활동했던 조소앙 선생이 작성한 건국강령 역시 1948년 제헌 헌법의 바탕이 된 귀중한 자료다.

■ 법치 국가, 민주공화국 건설 노력 담긴 흔적들

김붕준. /국가유산청 제공
김붕준. /국가유산청 제공

1888년 출생해 대한제국 말기 안창호, 박은식, 이동녕 등과 함께 서북학회와 신민회 등에서 활동했던 김붕준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검거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일했고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헌법을 만드는 등 정부 개선과 정비에 힘썼다.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전했을 때는 김구 등과 더불어 임시의정원 의장으로서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주도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국·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했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기여했다.

1919년 4월부터 1937년 10월까지 지금의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의 회의 개최 시기와 장소 등이 적힌 문서. 김붕준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지난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1919년 4월부터 1937년 10월까지 지금의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의 회의 개최 시기와 장소 등이 적힌 문서. 김붕준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지난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헌신했던 김붕준의 삶은 그가 보유하고 있던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관련 자료들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1927년 4월 제정, 공포된 임시정부의 3차 개정 헌법에 담긴 ‘대한민국 임시 약헌’이 대표적이다. 해당 헌법은 국무위원들의 집단 지도 체제로 임시정부를 운영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김붕준 일가가 소유하고 있던 이 법규집은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의 파주 수장고를 빌려 많은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임시 약헌’도 마찬가지다. 김붕준의 것임을 나타내듯, 앞 표지에는 김붕준의 또 다른 이름인 김기원이 자필로 적혀있다. 안에는 붉은 색으로 교정한 흔적 등도 남아있다.

1927년 4월 제정, 공포된 임시정부의 3차 개정 헌법이 담긴 ‘대한민국 임시 약헌’. 김붕준의 다른 이름인 김기원이 자필로 적혀있다. 김붕준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지난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1927년 4월 제정, 공포된 임시정부의 3차 개정 헌법이 담긴 ‘대한민국 임시 약헌’. 김붕준의 다른 이름인 김기원이 자필로 적혀있다. 김붕준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지난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임시의정원이 처음 생긴 1919년 4월부터 1937년 10월까지 모두 30차례 열린 회의의 개최 시기와 장소 등을 적어둔 ‘임시의정원 개최 일람표’ 역시 김붕준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의 변화상도 짐작할 수 있는데, 임시정부가 중국 광저우에서 활동했던 점 등도 해당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밖에 1944년 4월 개정된 헌법에 따라 변경된 정부 조직·체제의 내용 및 근거를 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잠행 중앙 관제’, 임시정부 산하에 조직됐던 한인들의 자치 기관 ‘상해 대한인 거류민단’의 운영 관련 법제 등을 담은 ‘임시 거류민단 제상해 대한인 거류민단 조례급 규칙’도 함께 보관돼있다. 모두 지난 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대한민국 설계자들의 같은 듯 다른 생의 족적

조소앙. /경인일보DB
조소앙. /경인일보DB

1887년 파주에서 출생한 조소앙은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1919년 2월 8일 재일 한국 유학생들이 독립을 선언한 ‘2·8 독립선언’을 이끌었다. 이어 같은 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했고,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일컫는 삼균주의를 토대로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작성했다. 이후 임시의정원 의원을 결정할 때 경기도 출신으로서 선출됐고, 임시의정원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항저우를 거쳐 난징으로 이동했을 무렵인 1937년께부터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김붕준과 마찬가지로 신탁통치를 반대했고, 국민의회 의장으로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건립되는 데 주력했다.

조소앙이 작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은 그의 핵심 사상인 삼균주의에 입각해 건국 방침 등을 정리한 문서다. 국·한문이 혼용돼있는데 1941년 11월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통과됐다. 모두 3개장, 24개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대한민국이 고유의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국권을 회복해 국제적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점 등을 명시했다. 이어 보통 선거제와 토지 국유제, 의무 공교육, 지방자치 실현 등을 통해 ‘삼균’이 실현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광복 후 1948년 7월 17일 국회가 제정해 공포한 제헌 헌법의 기본적인 바탕이 됐다.

조소앙이 작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광복 후 1948년 제정된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됐다. 지난 2019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조소앙이 작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광복 후 1948년 제정된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됐다. 지난 2019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고양시의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10장은 지난 2019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의 본적지이자, 유년 시절을 보냈던 양주시 남면에는 조소앙의 생애와 그의 ‘삼균주의’ 사상을 기리는 기념관이 지난 2016년 문을 열어,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경기도는 지난 3월 1일을 기점으로 경기도를 빛낸 독립운동가 80인을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조소앙이 첫 머리에 올랐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역이라는 이유에서다.

국권이 침탈됐던 시기에 출생해 자주 독립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헌신했던 김붕준과 조소앙은 광복의 기쁨을 맞은 이후에도 대한민국 건립을 위해 애쓰다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뜨거웠던 생의 자취를 감췄다. 같은 듯 다른 두 삶, 이들의 족적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항일의 기억 광복의 기쁨’ 기획 독자 이벤트

정답: 아담스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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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