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만리장성

 

가장 흔한 중식집 상호 하필 통닭거리

갈비 두 대 뜯고보니 만 칠천 원 괜찮다

뒷전으로 밀려난 고유의 매력 좀 고민

차돌박이는 안 그랬는데… 선택의 기로

올 것이 왔다. 본격 찜통 더위가 시작됐다. 매년 찾아오는 무더위지만 그래서 알고는 있지만 역시 처음은 힘들다. 목욕탕 온탕에 들어갈 때도 뜨거운 물이 살결에 닿는 첫 순간은 쓰리다. 그래서 올여름 폭염의 서막이 열린 지난 주말은 참 힘들었다. 전기 요금과 인내심 사이에서 무한 저울질을 반복해야 하는 시즌이 드디어 왔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열로 열을 다스린다는 뜻. 말의 유래를 찾아보니 조선왕조실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울 때 체온이 높아지면 반대로 몸속은 차가워지기 때문에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말도 있고, 뜨거운 음식을 통해 체내의 열이 밖으로 배출돼 더위를 이겨내는 데 좋다는 꽤 과학적인 근거도 뒤따른다.

옛말에 틀린 말 없다. 동료들과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이열치열을 명분 삼아 당당하게 짬뽕을 외쳐보자. 겨우내 절치부심하며 여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해 온 냉면집 사장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덥다고 짬뽕을 등한시하는 건 짬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더운 날씨에 무슨 짬뽕이냐고 타박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갈비가 짬뽕에 빠진 날

왕갈비와 짬뽕의 역사적 만남.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왕갈비와 짬뽕의 역사적 만남.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수원시는 명실상부 갈비의 고장이다. 과거 조선 후기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조한 뒤 농업을 장려하며 소가 많아졌고, 이곳에 우시장이 형성되면서 갈비가 유명세를 타게 됐다고 한다.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수원 왕갈비는 대중에 더 알려졌다. 하지만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가격이 사악하다. 특별한 날 한 번 가기에도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았다. 타지 사람들이 수원 갈비를 사달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자연스럽게 갈비 대신 갈비 맛이 나는 통닭으로 유인하는 게 상책이다.

영화의 흥행 이후 ‘수원 왕갈비통닭’이 실제 메뉴에 등장했고 방문객들의 발길이 늘며 수원에 위치한 ‘통닭거리’는 이제 전국구 명소가 됐다. 통닭거리 일대에 닭집만 있는 건 아니다. 유명한 곱창집을 비롯해 만두 전문점, 냉동 삼겹살과 육개장이 끝내주는 곳 등 지역에서 유명한 맛집들이 인근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중에서도 최근 ‘왕갈비짬뽕’으로 입소문 난 곳이 있다. 어느 동네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이름, ‘만리장성’이다.

어서 와. 왕갈비짬뽕은 처음이지?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어서 와. 왕갈비짬뽕은 처음이지?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수원 남문(팔달문)을 지나 북문(장안문) 방향으로 200m가량 가다 오른쪽 골목으로 꺾으면 통닭거리가 나온다. 만리장성은 통닭집들이 나타나기 직전 통닭거리 초입에 위치해 있다. 짙은 초록색 배경에 붉은색 한자로 된 간판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도심에서 보기 드문 단층 형태의 건물이다. 이곳이 핫한 이유는 바로 갈비짬뽕 때문이다.

만리장성을 지나면 바로 수원 통닭거리가 나타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만리장성을 지나면 바로 수원 통닭거리가 나타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한자에 취약하다면 단번에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한자에 취약하다면 단번에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갈비에 압도… 짬뽕은 거들 뿐

주문을 마치고 기대감과 배고픔의 긴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갈비짬뽕의 첫 느낌은 대단히 웅장했다. 걸쭉한 국물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두 대의 갈빗대가 ‘어서 와. 갈비짬뽕은 처음이지’라며 위용을 뽐낸다. 여기에 붙어 있는 고기도 상당한데 나중에 보니 국물 속에 고기 한 덩어리가 더 숨어 있었다. 내용물이 상당히 실하다. 시중의 웬만한 갈비탕보다 고기의 양이 더 많은 듯 하다.

갈비에 적당히 기름기도 껴있어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갈비에 적당히 기름기도 껴있어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가격은 1만7천원. 처음엔 짬뽕 한 그릇 치고 가격이 다소 비싼 게 아닌가 싶었지만, 실제 들어있는 고기 양을 따져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맛도 좋고 가성비 면에서도 훌륭하다. 평소 갈비탕에서 접했던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 그대로다. 차이가 있다면 짬뽕 국물이 배어 있다는 점 정도. 일반적인 매운 갈비찜보다 살짝 약한 맛으로 보면 된다. 사골 육수 베이스에 짬뽕 특유의 불맛이 더해져 적당히 매콤하다.

갈빗대에 붙은 고기를 발라내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갈빗대에 붙은 고기를 발라내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다만 짬뽕으로서의 정체성은 다소 모호하다. 갈비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 먹고 난 뒤엔 머릿속에 갈비만 남는다. 더욱이 갈빗대에 붙은 고기에 감탄하며 이를 발라내는 데 시간과 정성을 쏟느라 짬뽕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린다. 그 사이 면은 불고 국물은 식는다. 센캐(센 캐릭터)를 품느라 짬뽕의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짬뽕은 거들 뿐. 체면을 구겼다.

짬뽕을 먹고 이를 쑤시게 될 줄이야. 이처럼 갈비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갈비와 짬뽕이 만난 자체로 센세이션이자 훌륭한 조합인 건 맞다. 하지만 갈비를 만나 짬뽕 본연의 정체성이 흔들린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의문의 1패다.

도구를 이용해도 좋지만 갈비는 역시 직접 뜯는 맛이 더 일품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도구를 이용해도 좋지만 갈비는 역시 직접 뜯는 맛이 더 일품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갈빗대에 붙어 있는 압도적 고기 양에 감탄하게 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갈빗대에 붙어 있는 압도적 고기 양에 감탄하게 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같은 고기 계열이지만 차돌짬뽕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차돌박이는 과하지 않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짬뽕의 매력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새삼 차돌박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짬뽕이라면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