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사시설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나라 인천 강화도 북쪽 해안의 돈대가 아닐까 싶다. 예성강 입구, 황해남도 배천군 고미포가 마주보이는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구등곶돈대(龜登串墩臺)의 경우 1679년에 축조되었는데, 여전히 대한민국 해병대원들이 감시초소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 숙종 시기 군인들이 만들고, 지키던 그 시설에서 우리 해병대원들이 한강 하구 해안을 감시하고 있다. 구등곶돈대 남쪽의 홍예문 안쪽에는 ‘머리조심’이라고 쓴 빨간색 표식이 붙어 있다. 마치 해병대원들의 이름표처럼 보인다. 2025년의 우리 군인들이 346년 전 이 땅의 군인들이 쌓은 돌문을 드나들며 머리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광경은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흥미를 자아낸다.
강화 돈대는 조선 숙종 때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만든 조선군의 감시 초소이자 방어진지였다. 당시 강화를 지킨다는 건 바다를 통해 밀고 들어오는 외적에게서 수도 서울을 방어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강화 돈대 건설 공사에는 1만 명 정도의 군인과 기술자들이 동원됐다. 강원, 전라, 충청, 함경도 등지에서 승군(僧軍) 8천여 명, 돌을 다루는 기술자와 보조인력 2천여명이 80일 만에 48개의 돈대를 강화 해안에 쌓았다. 그 뒤로도 몇 곳을 추가해 54개가 되었다. 강화 돈대는 명실상부한 국가 방위 사업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군사시설 중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들이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프랑스 보방 요새 등이 대표적이다. 만리장성과 보방 요새는 오래된 군사시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기는 하지만 중국군이나 프랑스군이 지금까지 사용하는 군사시설은 아니다. 그저 이름난 관광지일 따름이다. 350년 가까이 군인들이 대를 이어 지키는 우리의 강화 돈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제, 인천 강화에서는 ‘돈대의 날 제정을 위한 강화돈대 재발견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강화 돈대 축조 배경과 그 과정, 그리고 오늘날의 보존 상황 등과 관련한 주제발표가 있었고, 돈대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350년 전 함경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군인과 기술자들이 강화 돈대를 만들기 위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면,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이를 기려야 할 때다.
/정진오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