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 여성인권단체 규탄 성명

삼산서에 사과·재발 방지 성명서

SNS 여론도 ‘분노·실망감’ 내비쳐

인천청 “아직 규정 위반 사항 없어”

1일 인천지역 36개 여성인권 단체가 ‘부평 가정폭력 살인 사건’과 관련해 ‘여성폭력 피해자 신변 보호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판단과 늑장 대응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천여성연대 제공
1일 인천지역 36개 여성인권 단체가 ‘부평 가정폭력 살인 사건’과 관련해 ‘여성폭력 피해자 신변 보호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판단과 늑장 대응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천여성연대 제공

‘부평 가정폭력 살인 사건’ 발생 전 남편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보호를 요청한 아내의 간절한 호소에도 경찰이 부실하게 대응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여성인권 단체들, “경찰, 피해자 호소 외면하고도 정당화” 비판

1일 인천지역 36개 여성인권 단체는 ‘여성폭력 피해자 신변 보호에 대한 경찰의 안일한 판단과 늑장 대응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서를 내고 “경찰은 피해자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경찰 조직의 무책임한 관행이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들은 해당 사건을 ‘경찰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과 구조적 무책임의 결과’로 명백한 ‘국가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60대 남성 A씨는 지난달 19일 오후 4시30분께 아내 B씨와 함께 살던 인천 부평구 자택 현관에서 B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최근 경인일보가 입수해 보도한 살인 사건 하루 전 B씨와 경찰관의 통화 녹취 내용은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인천삼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끝난 남편도 집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피해자를 질책하거나, 생계를 잇기 위해 간병인으로 일하다 다쳐 생활고를 겪는 아내에게 이혼 전까지 남편에게 금전 지원을 해주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6월30일자 6면보도)

실낱같은 희망 믿었는데… 보호조치커녕 질책·회유

실낱같은 희망 믿었는데… 보호조치커녕 질책·회유

하루 전인 지난 18일 오후 4시29분께 B씨가 인천삼산경찰서 측과 통화한 이 같은 내용의 녹취 파일(7분58초 분량)을 추가로 입수했다. 국민적 공분을 산 화성 동탄 납치살인사건에 이어 인천 부평 가정폭력 살인사건에서도 피해자 신변 보호에 대한 경
https://www.kyeongin.com/article/1744617

“유족에 사과, 수사 전 과정 진상조사,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책 마련”

이 단체들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삼산서 측에 요구했다. 또 인천경찰청에는 6개월 전 있었던 가정폭력 신고부터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수사 전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삼산서는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17일 흉기를 들고 아내 B씨를 협박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불구속 수사했다. 삼산서는 이에 대해 A씨가 초범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취재 결과 B씨는 신고 당시 경찰에 과거부터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B씨는 6개월의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가 끝난 남편이 집에 들어오려고 해 불안하다며 경찰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A씨에 의해 살해되기까지 별다른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연대 대표는 “경기 동탄 납치 살인 사건, 대구 스토킹 살인 사건 등에서 전·현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사건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경찰은 피해자(B씨)의 호소를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사과를 인천경찰청 측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겠다”고 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경찰을 향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경찰이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참변은 없었을 것”, “피해자는 목숨을 위협받는 다급한 순간에도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경찰을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현실” 등 경찰을 향한 분노나 실망감을 드러내는 시민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경찰청 “규정 위반 없고, 녹취 일부 표현도 해석 다를 수 있어”

인천경찰청은 삼산서가 수사와 피해자 보호 조치 등에서 관련 규정을 위반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았다.

인천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아직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관들의 규정 위반 사항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는 (인천경찰)청장에게도 보고됐다”며 “녹취와 관련해서도 일부 표현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선아·정운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