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다리에 동네 이름 붙이겠다고 ‘아등바등’
인천의 제3연륙교 힘겨루기는 남사스럽다
‘중립’ 강조한 공모 4건 선정 혼란스럽기만
제 역할 놓아버린 듯한 행정은 참 볼품없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골든게이트교(Golden Gate Bridge)는 1846년 미 육군 장교이자 탐험가인 존 프리몬트가 샌프란시스코 만과 태평양 사이의 좁은 수로를 보고 붙인 이름 ‘크리소필레이(Chrysopylae)’에서 비롯됐다. ‘황금의 문’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를 떠올린 그는 이 해협이 장차 아시아와의 해상교역의 주요 관문이 될 것이라 믿었다. 1920~1930년대 다리 건설이 논의될 때 영어식 이름인 ‘골든게이트’가 자연스럽게 힘을 얻게 된 배경이다.
이 명칭이 처음부터 두루두루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당시 일부 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들, 그리고 언론은 황금의 문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시적이고 허세라며 반대했다. 건설 예정지 북쪽의 마린 카운티에선 자신들 지역 이름이 반영되지 않은 점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공황 시기였다.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이름이 필요했다. 서부 개척 정신,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시대 상황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교직(交織)한 결과물이 오늘의 저 이름이다.
1976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의 파라노아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완공되자 당시 군사정권은 ‘코스타 이 실바(Ponte Costa e Silva)’란 이름을 붙였다. 군사독재 초기의 대통령으로 가장 억압적인 통치자였다. 군사정권 종식 후 30년이 지난 뒤인 2015년 브라질리아 의회는 교량 명칭을 ‘오네스치누 기마랑이스(Ponte Honestino Guimaraes)’로 변경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1973년 군사정권에 의해 체포된 후 실종된 학생운동 지도자로 브라질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이다.
수구세력은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브라질 연방구 고등법원은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절차적 흠결을 문제 삼아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의회의 명칭 변경 법안 재의결,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 거부권에 대한 의회의 무효화 조치 등 험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2022년 마침내 다리는 브라질 민주주의의 상처와 회복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브라질 사회가 과거 군사독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모색의 결정(結晶)이다. 기억의 공간화 작업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렇게 ‘좀 더 큰’ 뜻과 가치를 지향해온 시대 불문의 인간 의지에 견주면 새로 놓는 다리에 고작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을, 그것도 기필코 앞에 갖다붙여야겠다며 아등바등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다.
한강의 고덕토평대교와 충남의 원산안면대교 등의 사례도 있지만 지금 인천의 제3연륙교 명칭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남사스럽다. 올 연말 완공되는 이 다리의 양 끝에 영종국제도시와 청라국제도시가 놓여있는데 이곳 주민들을 중심으로 명칭 싸움이 벌어진 지 오래다.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들까지 기자회견을 갖는 등 일찌감치 합세하고 나섰다. 해당 기초지자체들도 덩달아 들썩들썩한다. 가만히 있으면 욕받이 되기 십상이다.
연륙교 건설과 명칭 제정의 주관기관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태도는 더 가관이다. 지자체들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자신을 포함한 3개 기관이 각자 공모를 통해 2개씩 모두 6개의 명칭을 추려서 인천시 지명위원회로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경기를 관리해야 할 심판이 돌연 선수복으로 갈아입고 트랙에 뛰어든 모양새다. 5월부터 한 달간 ‘중립 명칭’을 유독 강조하는 공모를 시행하고, 명칭심사위를 구성해 어렵사리 선정한 4건의 다리 이름을 놓고 시 홈페이지를 빌어 다시 선호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 4건 중 2건은 ‘영종청라대교’와 ‘청라영종대교’다. 그토록 강조한 중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민의 수렴을 위한 행정 절차도 살짝 의도가 불순해지면 책임 회피를 위한 행정 기술이 된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행정의 테크닉들이 선의와 악의, 그 좁은 간극에서 절묘하게 작동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느라 좀 더 큰 뜻과 가치를 잃어버린 세태만으로도 속상한데,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선의와 악의의 틈새에서 제 역할을 놓아버린 듯한 행정은 참 볼품없다.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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