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대사면을 단행했다. 음주운전 면허취소자가 대거 포함됐다. 각종 비리 및 5·6공 공안사건 관련 정치인들의 사면복권에 면허취소자들을 포함시켜 국민대통합으로 버무렸다. 정권마다 음주운전 사면이 반복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기념, 월드컵 4강 자축 사면을 단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1회, 이명박 대통령이 2회, 박근혜 대통령이 1회 사면으로 음주운전자를 구제했다. 음주운전 면허 취소자들은 정권 교체만 기다렸다.

음주운전 사면을 준법의식 훼손이라며 반대한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음주운전에 관대했던 사회 분위기 탓인지 정권마다 음주운전 사면을 집권 선물이나 정권 유지 도구로 활용했다. 2017년 윤창호법으로 음주운전이 반사회적 범죄가 되자 사면대상에서 방출됐다. 문재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면 때는 음주, 무면허 사범 등 교통법규 중대위반자들이 모두 제외됐다.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울 때까지 20년 넘게 걸린 셈이다.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원 이하 금융 채무를 탕감해 준다는 정부의 계획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추경에 예산 8천억원을 세워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113만명의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한다는데, 시비의 핵심은 성실한 채무 상환자들과의 형평성이다. 생계비를 줄이면서까지 채무를 상환하는 국민은 바보라는 반론 앞에 채무탕감론이 휘청댄다. 탕감 대상에 외국인 2천명의 채무 182억원과 도박자금 등 반사회적 채무까지 포함된다는 뉴스에 여론의 심리적 저항이 심상치 않다.

가계부채가 심각해지면서 채무탕감 대책이 최근 정권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금융’ 정책으로, 윤석열 정부는 ‘새출발기금’ 프로그램으로 채무를 탕감하거나 조정했다. 채무상환이 불가능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재기가 명분이었다. 이때도 성실한 채무상환자에 대한 형평성 시비가 일었다. 채무상환자들이 채무탕감 재정과 금융비용을 세금과 이자로 부담하는 역차별 시비도 거셌다.

이러다간 음주운전 사면처럼 채무탕감이 새 정권의 집권 기념선물이 될까봐 걱정이다. 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인생을 갈아넣는 국민들에겐 허망한 일이요, 무책임한 채무자들은 정권교체만 기다릴 수 있다.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채무탕감 효과를 위해 감당할 일인가 싶다. 도덕적 해이는 사회통합의 원흉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