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 살해’ 끔찍함 속 불편한 진실
상습 폭력 기록있는데, 작년말 ‘초범’ 취급
접근금지 종료 일주일, 추가 조치조차 늑장
공분 샀던 동탄·대구 살인사건과 ‘같은 궤’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 짧은 이 문장에는 인천 부평구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의 불편한 진실들이 숨어 있다.
첫째, ‘상습적인 가정폭력’이 있었다. 60대 남성 A씨는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17일 자택에서 아내 B씨를 흉기로 위협한 ‘특수협박’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A씨를 가정폭력 초범으로 여겼다.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다. 특수협박이 처음이라는 게 경찰 해명이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 B씨는 신고 당시 과거에도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해 병원에서 진료받은 기록까지 있다며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경찰에 호소했다.
국무조정실,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등은 2013년 6월 가정폭력을 ‘4대 사회악’ 중 하나로 규정하며 상습적인 폭력이나 흉기를 든 사범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고 과거 전과와 여죄 등을 적극 확인하는 ‘가정폭력 방지 종합대책안’을 발표한 바 있다.
둘째, ‘보복 범죄의 징후’가 있었다. 불구속 수사를 받던 A씨는 법원이 내린 6개월의 임시조치(접근금지 명령)가 풀린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19일 자택 현관문 앞에서 아내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는 그 일주일간 최소 3차례 아내를 찾아가 위협했다. 아내가 두려움에 떨며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꾼 데 화가 난 A씨는 가정폭력 사건을 담당한 인천삼산경찰서에도 최소 2차례 찾아가 “경찰이 책임지라”며 행패를 부렸다. 아내 B씨는 남편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기 전날까지 일주일간 신고와 상담 등 수차례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셋째, 경찰의 ‘안일한 판단과 늑장 대응’이 있었다. 최근 화성 동탄 납치 살인 사건도 이 때문에 공분을 샀다. 경인일보는 B씨가 삼산서 측과 통화한 녹취 파일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그녀가 숨지기 전날 이뤄진 통화 속 경찰관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보호는 못해줄망정 접근금지 명령이 끝난 남편도 집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며 되레 가정폭력 피해자인 B씨를 질책했다. 또 간병인으로 생계를 잇다가 다쳐 생활고를 겪는 그녀에게 이혼 전까지 남편에게 돈을 주고 구슬리라고 종용했다. 이에 B씨는 탄식하며 체념한 듯했다.
뒤늦게 경찰이 B씨에게 경찰서를 방문하면 스마트워치를 주고 자택 주변 CCTV 설치를 의논하기로 했다는 날에 그녀는 살해됐다. 그 일주일 사이에 B씨는 이런 최소한의 보호 조치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넷째, 적어도 ‘접근금지 추가 조치’는 가능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임시조치 외에 최장 3년간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을 두고 있다. A씨에게 내려진 임시조치(1회 2개월, 2회 연장)는 피해자보호명령이나 가해자 구속, 법원의 징역형 선고 등이 있기 전 가해자의 접근을 막는, 말 그대로 임시적인 조치다. 피해자보호명령은 상해진단서 등 소명자료 준비, 법원 심리 등을 거쳐야 해 가·피해자 즉각 분리를 위한 임시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경찰에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피해자보호명령 등을 청구할 수 있음을 피해자에게 안내해야 하는 ‘고지 의무’까지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과제’가 남았다. 지난 1일 인천지역 여성인권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경찰은 피해자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가해자 입장에서 상황을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천경찰청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유족에 대한 사과 등을 촉구했다.
부평 가정폭력 살인 사건은 앞서 동탄 납치 살인 사건과 대구 스토킹 살인 사건 등에서도 확인된 구속·불구속 수사의 모호한 기준이나 가·피해자 분리 조치의 무너진 원칙, 그리고 피해자 보호 관련 법적·제도적 미비점 등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을 남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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