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부평 가정폭력 살인’과 관련 경찰이 피해자의 호소에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천지역 36개 여성인권단체는 지난 1일 공동 성명을 내고 “경찰 조직의 무책임한 관행이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동탄·대구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법적 보호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60대 남성 A씨는 지난달 19일 오후 4시30분께 자택 현관에서 아내 B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접근금지 명령(임시조치) 6개월이 종료된 지 1주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 발생 전 B씨와 아들 C씨는 보복이 두렵다며 경찰에 신고·전화상담 등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었다. 최근 경인일보가 입수한 B씨와 경찰관의 통화 녹취 내용은 충격을 던진다. 인천삼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남편도 집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질책하거나, 생활고를 겪는 B씨에게 금전 지원까지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인천경찰청은 규정 위반이 없다는 입장이다.
‘가정폭력처벌법’에는 임시조치와 연계되는 ‘피해자보호명령’을 명시하고 있다. 법원은 피해자보호명령으로 최대 3년간 접근·연락 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다. 특히 경찰은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피해자보호명령이나 신변안전조치 ‘고지 의무’가 있다. 피해자보호명령은 피해자나 검찰이 직접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심리 기일을 정해 조사한 뒤에야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시행까지는 최소 1주일이 걸린다. 경찰은 B씨가 18일 경찰서에 전화해 추가적인 보호 조치를 문의한 후에야 “경찰서에 방문하면 ‘피해자보호명령’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B씨가 살해된 19일은 스마트워치를 받고 주거지 주변에 CCTV 설치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날이었다. 결국 B씨는 임시조치가 끝나기 전 피해자보호명령이 시행되지 못해 1주일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임시조치와 피해자보호명령 등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초범’은 가해자에게 방패막이 되어왔다. 반면 피해자는 사지로 내몰린다. 비극이 반복된다는 것은 법적·제도적 허점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와 영국·호주의 체포우선주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최장 6개월인 접근금지의 연장 횟수와 기간 확대는 당장 논의해야 한다. 사안이 엄중하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숨겨진 구조적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피해자 중심의 강력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