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벽 등 투명창 잦은 조류 충돌
숲 대신 고층건물 들어서며 늘어
‘방지용 격자무늬’ 고시·조례에도
지자체 간접 지원책뿐 한계 뚜렷
‘떼지마세요’ 시민이 스티커 붙여

광주에 거주하는 A씨는 얼마 전 거주하는 아파트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무심코 바라본 정류장 투명유리막에 충돌 흔적과 깃털이 붙어 있어서였다. 아래는 자는 듯 누워 있는 죽은 참새가 보였다.
A씨는 “버스를 기다리다 깜짝 놀랐다”며 “유리창이 있는 줄 모르고 날아오다가 부딪혀 죽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버스 유리막에 더덕더덕 종이와 코끼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버스정류장엔 ‘새가 유리에 부딪혀서 죽어요. 떼지 말아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A씨가 적은 메시지가 붙었다.

안타깝게도 새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붙여놓은 A씨의 스티커는 큰 효과가 없다. 비행 중 유리창, 유리막을 인지하지 못하는 새들에게 유리의 존재를 알리려면 새의 시각적 특성을 고려한 간격과 모양의 특별한 표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단 광주의 사례뿐 아니라 최근 양주 옥정 신도시에서도 비슷한 조류 충돌 피해가 나타났다. 올해 입주한 B아파트에선 이달 들어 멧비둘기가 방음벽에 잇따라 부딪혀 죽어나갔고, 주민 일부는 시청과 국민신문고를 통해 해당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조류충돌을 막기 위해선 5×10㎝ 간격의 격자무늬 스티커가 필요하다며 지자체의 지원을 주장한다.
지역 곳곳에서 발생하는 조류 충돌 피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A씨가 전한 광주 사례는 높은 고도의 언덕을 깎아 지난 2022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과거엔 숲으로 아주 오랜 기간 새가 비행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건설되고 방음벽이 설치되며 비행하는 새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완성됐다. 논밭, 나대지였던 지역을 대대적으로 거주지로 바꾼 옥정신도시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도심 곳곳에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며 외벽을 유리로 장식하거나 높은 방음벽을 설치하며 조류 피해는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한 해 동안 한국에서만 800만 마리 이상의 조류가 이런 충돌 피해를 입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8년 온라인 기반 자연공유 플랫폼 ‘네이처링’은 조류충돌에 대한 시민 제보를 자발적으로 접수하기 시작했는데 2일 현재까지 경기도에서만 1만557개체가 충돌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처링 사이트에 접속하면 시민들이 사진으로 기록한 충돌 피해 현장과 충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조류 충돌 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몇 년 사이 방음벽 설치 시 조류충돌 방지기능을 넣도록 하는 정부 고시가 탄생했고, 몇몇 지자체에서는 관련 조례도 제정했지만 조류 충돌 피해를 근원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다. 새의 시각적 특성을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설계된 방지 무늬가 필수인데 정확한 검토 없이 방음벽을 시공하거나 이런 노력마저 없이 일반 유리 방음벽 설치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자체 조례의 경우 야생조류 충돌 실태를 조사하거나 조사를 위탁할 수 있게 해놓는 등 간접적인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A씨는 “인터넷에서 동물 스티커를 붙여두면 새가 피해간다는 이야기를 보고 코끼리를 붙여놓게 된 것”이라면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서 새들이 죽는 피해가 멈췄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