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없는 전시장 벽의 디테일 ‘History of’
모든 공간 초점 맞춘 나무 이미지 ‘A Tree’
찰나의 시간을 중첩한 ‘A Moment’ 비롯해
권순학 작가 주요 프로젝트 작품 선보여

지난달 17~30일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보다(BODA) 갤러리에서 열린 권순학 작가의 개인전 ‘Detail’을 소개합니다.
권순학은 사진과 설치 작업을 통해 사진의 한계를 실험하면서 시공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권 작가는 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이기도 합니다. 이번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갤러리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이어온 주요 프로젝트의 핵심을 모았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History of’ 시리즈가 눈에 띄었습니다. 전시 공간의 비어 있는 벽을 클로즈업해서 여러 장 촬영한 후 이어 붙여 실제 벽과 1대 1 비율의 초고화질 사진으로 만들었습니다. 권 작가는 작품이 걸리지 않은, 못 자국이 곳곳에 나고 테이프나 포스트잇 같은 것만 붙어 있는 전시 공간의 벽을 주목해 그 디테일을 모두 사진에 담았습니다.
무의미해 보이나요? 작가는 비존재(nothing)에 관한 고민을 작품에 담았다고 합니다. 갤러리현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V&A) 박물관 등 엄청난 작품이 걸렸을 벽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사진을 통해 작가는 관람자에게 ‘순수한 보기’(pure seeing)를 제안합니다. 작가는 “벽의 미시적 세부는 관람자가 거시젹 개념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하며, 현실을 습관적으로 해석하는 우리의 시각적 관습을 성찰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특히 권 작가의 ‘History of’ 시리즈는 실제 전시 장소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설치 작업과 함께하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팝업’ 형식이라 설치 작업과 함께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네요.
‘A Tree’ 시리즈 또한 ‘초점 없는 이미지’라는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합니다. 영국과 경기도 화성 송산 등지에서 촬영한 커다란 나무의 전경으로 보이는 사진들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사진을 풍경을 찍듯 멀리서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후 파노라마와 사진 스티칭 기법을 활용해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연결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사진의 모든 부분에서 선명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권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관람자는 동시에 가까움과 멀어짐을 경험하면서 이미지 속에서 거리를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공간과 시각적 인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우리는 무한히 확장된 공간을 하나의 이미지 않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A Moment’ 시리즈는 권 작가가 한창 실험 중인 작업이라고 합니다. 하늘, 땅, 바다 등 동일한 장면을 다양한 설정으로 촬영했습니다. 그 다수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중첩해 구성한 작품입니다. 각 이미지의 조각은 서로 다른 동시에 같은 장면을 만드네요. 같은 공간 또는 장면이라도 ‘찰나의 순간’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학생들을 위한 전시였고요. 권 작가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니, 권 작가의 작업에 관심이 많고 질문도 많았다고 합니다.
권 작가의 작품들은 전시장에서 직접 관람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진 실험 작품을 사진으로만 보여주려니, 작품의 진가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조금 아쉽습니다. 권순학 작가의 작품을 향후 개최될 전시회 현장에서 관람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