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궁리’ 찾는 지역화폐 생태계
쓸곳 늘어난 소비자들 ‘무엇을 살까’… 그늘 깊어진 골목상권 ‘어떻게 살까’

새 정부 들어 지역화폐 활성화가 예상되는 점과 맞물려, 편의성을 높이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다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역화폐 사용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화폐의 본래 취지가 골목상권과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데 있는 만큼, 무분별한 확대는 오히려 본연의 정책 취지와 방향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아 갑론을박이 지속되고 있다.

■ 차츰 사용처 넓혀가는 경기지역화폐
정부, 농·어촌 지역 등 연매출 30억 넘더라도 하나로마트 사용 허용
경기도에선 일부 대규모 점포내 개별점포도 가맹점 등록 기준 완화
최근 행정안전부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운영 지침’을 개정했다. 마트·슈퍼·편의점 가맹점이 없는 면(面) 지역에 한해 농협 하나로마트도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정부 기준에 따르면 지역화폐 가맹점은 연 매출액 30억원을 넘지 않는 점포만 등록할 수 있다. 당초엔 농·어촌 지역에 있는 하나로마트라도 대부분 연 매출액 30억원(정부 기준)이 넘어 가맹점 등록이 불가능했다.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도시지역에 비해 농·어촌 지역 등은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적어, 지역화폐가 골목 상권에 미치는 영향에 차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농민·농촌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해도 이런 문제 때문에 ‘지역화폐를 받아도 쓸 곳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번지기도 했었다. 이에 농·어촌 지역 등에 한해 연 매출액 30억원을 넘더라도 하나로마트 등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경기도에선 일부 대규모 점포 내 개별 점포도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현재 지역화폐 가맹점 등록 기준은 정부 지침 상에선 연 매출 30억원 이하 점포이지만, 경기도는 규정을 더 강하게 적용해 12억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규모 점포 내에 있는 개별 점포는 도의 지역화폐 가맹점 등록 상한 기준인 연 매출액 12억원을 넘지 않는 소상공인 점포임에도, 대규모 점포에 입점해있다는 이유만으로 한데 묶여 가맹점 등록에서 제외됐었다. 이런 점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었다. 지난달 12일 본회의 5분발언에 나선 전자영(민·용인4) 도의원은 “서울과 부산은 대규모 점포 내 개별 점포에 대한 가맹점 등록 제한 규정을 두지 않는다”며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로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주민들도 이중고를 겪고 있다.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도는 지난 5월 지역화폐 심의위원회에서 ‘대규모 점포 부분 해제(쇼핑센터 확대)’의 건을 가결했다. 지난달 회의를 통해서는 부천 광성상가·고강제일시장, 세이브존 아이엔씨 상동점, 용인 수원프리미엄아울렛, 평택 브리시티고덕, 용인 쥬네브썬월드 등 일부 대규모 점포 내에 들어선 개별 점포의 지역화폐 가맹점 등록을 허용키로 했다.

■ 사용처 확대 요구 지속돼…무조건적인 규제 완화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정치권 “현실 맞지 않는 규제로 자영업자·주민 피해… 문턱 낮춰야”
취약계층 이용토록 ‘병원·의원·약국 연매출 12억 적용’ 예외 주장도
실제 사용처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더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도의회에서는 병·의원과 약국에 대해선 경기도의 가맹점 등록 기준인 ‘연 매출 12억원’ 적용에서 예외를 둬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지역화폐로 각종 공공 지원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 속 취약계층은 이를 토대로 병·의원과 약국을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은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연 매출 12억원을 넘는 병·의원, 약국이 적지 않아 실제 사용 시 불편을 겪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지난달 25일 진행된 경기도청 예산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진형(민·화성7) 의원은 “취약계층은 지역화폐를 병·의원이나 약국 등 필수 의료비 지출에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도는 지역화폐를 연 매출 12억원 이하 소상공인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일부 병·의원, 약국에선 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가 결제 가능한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병·의원, 약국에선 제한 없이 쓸 수 있도록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본래 취지 전통시장·자영업자 보호 엇박자… 무분별한 확대엔 우려
정치적 지지 기반 넓히려다 골목상권 혜택 줄어드는 결과 초래 지적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역화폐 본래 취지인 골목상권 활성화를 고려할 때 무분별한 확대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역화폐의 주요 목표는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고 자금의 지역 외 유출을 방지해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지역화폐 사용처 확대가 소비자의 편의는 높일 수 있지만 자칫 골목 소상공인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줄이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반론의 요지다.
일선 소상공인들은 지역화폐가 본 목적대로 쓰이기 위해선 가맹점 확대 조치가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백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장은 “가맹점 확대 움직임은 소비자 편의 중심 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지역화폐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가맹점 확대 조치는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가맹점 확대에 신중론을 펼쳤다. 김태윤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지역화폐 가맹점 규제를 풀려고 하지만,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넓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지역화폐가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빗발치는 지역화폐 가맹점 확대 요구에 대해 경기도는 지역화폐심의위원회를 통해 합리적으로 관리,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사용자 편의성 증진을 위해 가맹점 확대 요청이 많이 제기되는 추세다. 심의위원회에서 고민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취약계층 등에 대한 정책 발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도의회의 도청예결위 회의 당시 정두석 도 경제실장은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점포와 전통시장 등 어려운 상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병·의원까지 풀기에는 무리가 있다. 병원들은 대부분 소상공인이 아니다”라면서도 “(취약계층 지원 등을 위해) 일반 발행과는 다르게 정책적 목적을 가지고 발행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