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의 노력에서 오는 자기 확신

순환·되먹임에 루틴은 강화되지만

조건없는 믿음으로 확신 발동 필요

훈련과 도전의 시간 견디고 있다면

한번쯤 근거 없이 스스로 믿어주길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일만 하고 놀지 못해 스트레스 받던 차에, 머리나 식힐 겸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 ‘F1’을 보았다. 오래도록 하부 리그를 전전하던 은퇴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나이의 카레이서가,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빠르며 기술적으로 정교한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여 노력 끝에 결국 우승을 하는 이야기다.

만원 정도의 가격이면 집에 편히 누워서 수백 수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OTT 세상이 있는데 굳이 두 배의 돈을 주고 단 한 편의 영화를 위해 교통체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좀 손해 보는 것 같은 시대가 왔다지만 거대한 화면과 어둠 속에서의 몰입감, 의자까지 울리는 돌비 서라운드, 뭐 그런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오랜 바람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다.

재능 있는 사람이 남들보다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익혀서 금방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이야기라든가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경쟁자들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이야기 따위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바라는 건 약한 사람, 어린 사람, 여린 사람, 늙은 사람, 슬픈 사람이 오랜 시간 노력해서 무지막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춘다거나 악당 같은 강자를 물리치는 이야기다. 아니 악당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악당이 아니라 그 극복 대상이 운명이면, 가난이면, 자기 자신이면 더 좋아진다. 물론 기성세대가 억압적으로 강요할 때 쓰는 “하면 된다” 같은 이야기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순정한 열정과 자기 확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아주 천천히 바뀌는 삶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것 말이다. 이길 필요는 없다. 때론 이기지 못할 때 더 빠져들기도 한다.

오랜 기간 열정을 유지하려면,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연습이나 단련 혹은 노력 같은 것을 지속하려면 자기 확신이라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확신은 루틴에서 온다.

영화에서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동체 시력을 키우기 위해 날마다 고무공을 양손으로 튀기고 잡는 훈련을 한다. 진지하게 하는 훈련이라기보다는 매일 틈날 때마다 하는 놀이 같은 연습이다. 시간 내서 진지하게 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틈날 때마다 재미있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얼음물에 얼굴을 담그며 시작하는 하루에 촘촘히 배치된 훈련 루틴,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놀이처럼 반복하는 고무공 튕기기. 그 시간이 쌓이고 쌓였을 때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보상 없는 노력의 긴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눈치챘겠지만 이건 순환 논리이다. 노력을 긴 시간 지속하려면 자기 확신이 필요하고 자기확신은 반복하는 루틴, 다시 말해서 긴 시간의 노력에서 온다. 하지만 이 되먹임의 거대한 원형 세계관 안에 한번 발을 들이면 그다음부터는 순환의 힘, 되먹임으로 강화되는 루틴이 생긴다. 그러니 한 번쯤은 루틴에 의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을 근거 없이 믿어주어야 한다. 자동차도 한번은 시동을 걸어야 달릴 수 있듯이, 처음 한번은 우리가 우리를 조건 없이 믿어서 확신의 발동을 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가 선물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등을 밀어 루틴을 시작하고 그 루틴이 쌓여 자기 확신을 만들고, 다시 자기 확신이 믿음이 되어 보상 없는 긴 시간의 훈련을 견디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출발점이나 다름없는 막막한 지점에서 훈련과 도전의 시간을 견디며, 공고한 기득권과 기성세대의 벽을 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부하고 싶다. 한 번쯤은 아무 근거 없이 스스로를 믿어보라고. 그리고 그렇게 시작하고 지켜낸 오랜 바람이 천천히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는 것을 지켜보라고.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