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복거일 ‘미추홀, 제물포, 인천’ 출간

한국 고대사부터 현대사 흐름 속 인천 주목

“미추홀, 제물포, 인천 잇는 역사 매료돼”

인천 내항 1·8 부두 전경. /경인일보DB
인천 내항 1·8 부두 전경. /경인일보DB

보수 논객이자 1980~90년대 한국 SF(Science Fiction) 문학을 선도한 소설가 복거일이 최근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천의 역사를 총망라한 장편 소설 ‘미추홀, 제물포, 인천’(무블·2025)을 발표했다.

인천에 연고가 깊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복거일 작가는 어째서 사실상 ‘인천’을 주인공으로 삼은 장편 소설을 썼을까. 우선 신작 ‘미추홀, 제물포, 인천’에 대해 알아보자.

2권짜리 총 89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소설은 2천700만년 전 지구 역사를 다룬 ‘황해의 탄생’이 출발점이다. 한반도에 원주민이 생겨나고 고구려 졸본성에서 비류백제의 미추홀로, 경기만의 번성과 몽골의 고려 침입, 조선 왕조의 성립과 임진왜란·병자호란, 병인양요와 서세동점 그리고 제물포 개항, 일제 강점과 해방,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큰 흐름 속 인천을 중심에 뒀다.

특히 근대 이후 인천을 찾은 서양인들, 하와이 이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휩싸인 제물포, 인천 최초의 야구단 한용단, 인천상륙작전, 인천학도의용대, 경인고속도로 등 지역사를 중요하게 다뤘다. ‘만셕’과 ‘월례’ 일가의 가족사를 역사의 흐름에 엮어 95개 이야기로 풀어냈다. 소설의 마무리는 2014년 개최된 인천아시안게임이다. 복거일 소설답게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 “제물포는 한국의 ‘드리나강의 다리’”

복거일 작가는 지난 2일 경인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문학을 하기 전부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1945)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다리를 주인공으로 삼아 400년 동안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 오래 전부터 제물포를 떠올렸어요.

제물포를 통해서 서세동점 시기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들어왔고, 제물포란 도시 자체가 성장했습니다. 제물포는 (근대 문물이) 당시 서울 한성에서 한 것보다 앞서서 조그맣게라도 먼저 싹을 틔운 곳입니다. 숨겨진 이야기가 아주 많죠. 그 역사에 매료돼 제물포를 고향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물포 이전의 미추홀에 주목했고, 제물포 이후의 인천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다음은 작가의 인천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의 한 대목이다.

“제물포의 개항은 미추홀의 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비운의 고구려 왕자 비류가 정착한 뒤 2,000년 동안, 미추홀은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황해에서 가장 복잡한 지형인 경기만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지만, 미추홀이 중심적 역할을 한 적은 없었다. 남만주에서 내려온 고구려 이민들이 정착한 시기엔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밀렸고, 고구려 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엔 바로 남쪽 당항성이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요지였다. 고려 시대엔 도읍 개경의 외항인 예성항이 중심이었다.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나 군사적 요지는 섬인 강화도였다.

이제 문득 제물포가 경기만의 중심이 되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아주 큰 서해에서도 수심이 얕아 큰 배들이 드나드는 항구로선 적합하지 않은 포구가 외국에 열린 항구가 되면서, 국제적 중요성을 지닌 곳으로 바뀌었다. 미추홀의 제물포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1권, 341~342쪽)

■ 외부 시선으로 쓴 지역사 소설

복거일 작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자료, 현장, 인터뷰 등 취재 결과를 쌓아가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에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지역 원로 신용석(84) 인천시립박물관 운영위원장과 그의 아버지 신태범(1912~2001) 박사, 조부 신순성(1878~1944) 양무호 함장 ‘3대 이야기’가 녹아 있으며 곽상훈(1896~1980), 장면(1899~1966), 조봉암(1899~1959) 등 현대사의 굵직한 인천 인물들이 등장한다.

복거일 장편 소설 ‘미추홀, 제물포, 인천’ 표지. /무블 제공
복거일 장편 소설 ‘미추홀, 제물포, 인천’ 표지. /무블 제공

소설에선 개별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는 ‘의식의 흐름’ 방식을 차용하고, 당대의 실제 발음까지 확인해 삶의 구체성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오랜 작품 활동의 구력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복거일 작가는 “조봉암 선생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인데, 우리 역사의 비극”이라며 “인천에서 학도의용대를 조직한 고마움도 덜 알려졌기에 소설에서 다뤘다”고 말했다.

문제적 역사소설과 과학소설을 꾸준히 써온 복거일은 그의 정치 성향으로 대중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다만 이 소설은 인천 연고 작가가 아닌 외부인의 시선에서 통사적 흐름으로 인천을 바라본 이례적 작품임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인천의 내부자 입장에서 읽어 낼 행간이 많은 흥미로운 텍스트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