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도시 곳곳을 감시하고 ‘아동 유괴’라는 단어조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수법이 현실에 등장했다.
“간식 사줄게.”

사건은 지난 5월22일 남양주시에서 70대 남성 A씨(7월1일자 인터넷 보도)가 등교하던 초등학생에게 이 한마디를 건네면서 시작됐다. 그는 아이를 자신의 차에 태워 인근의 농막으로 끌고 가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부모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꿰뚫었다. 부모가 다급히 제지하자 A씨는 그대로 달아났고, 유괴는 ‘미수’라는 이름으로 가까스로 멈췄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양주남부경찰서는 부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주변 CCTV를 샅샅이 분석한 뒤 A씨를 검거했고, 조사 과정에서 여죄를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가 추가돼 검찰에 넘겨졌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특정 아동을 목표로 사흘 연속 접근했다. 그는 범행 전날과 전전날에도 같은 아이에게 접근하며 범행을 시도했다. 반복적인 접근과 이동 수단 확보, 사전 범행 시도 등은 단순 충동이 아닌 범행의 고의성과 계획성을 시사한다.
2025년에도 ‘과자 줄게’… 고전적 수법은 왜 반복될까
A씨의 범행 수법은 놀라울 정도로 ‘클래식’했다. “과자를 사주겠다”. 수십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가르칠 때 예시로 들던 전형적인 방식이다. 최근 서울 강남·대전·충남 아산 등지에서도 “음료수 사줄게”라는 말 등으로 아이를 유인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례가 잇달았다.
이런 낡은 범행 수법이 2025년의 첨단 사회에 등장한 이유는 역설적이다. 디지털 위협에는 강하게 반응하도록 훈련된 아이들이 오히려 현실 속 낯선 어른의 친절에는 무방비하게 반응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만 10세 전후의 아동은 아직 상황 판단이 상대적으로 미숙하고 낯선 어른의 친절에 쉽게 무장해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괴 예방 교육은 학교에서 한두 차례 실시되는 데 그치며, 실제 상황에 대한 참여형 시뮬레이션 교육은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교육은 ‘알리는 것’에 그치고 방어는 ‘운’에 기대게 되는 셈이다.
대검찰청 최신 통계도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2023년 전체 약취·유인 범죄 중 58.5%가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절반 이상의 비율로, 여전히 가장 취약한 연령대가 주된 범행 대상이 되고 있었다. 특히 유괴범의 연령층을 보면, 가장 높은 비율은 61세 이상(25.1%)이었으며, 31세~40세(23.4%)와 51세~60세(18.3%)가 그 뒤를 이었다.

범행 수법이 ‘고전적’ 방식인 이유는 범죄자의 익숙한 행동 패턴과 무관치 않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괴나 유인 범죄를 보면, 범죄자의 연령이 높은 경우일수록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사이버 기반 범행보다는 과거 자신이 익숙하게 봐왔던 방식, 즉 아날로그적인 접근 방식으로 범행을 시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짚었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아이를 구한 건 멀리서 지켜보던 부모의 ‘눈’이었다. 아무리 CCTV가 촘촘히 설치된 사회라 할지라도, 아동 안전의 최종 책임은 결국 어른들의 관심과 경계에 있다는 서늘한 사실을 일깨운다.
‘유괴 미수’와 ‘실종 아동’ 사이… 종이 한 장 차이
이번 사건은 ‘유괴 미수’라는 이름으로 남았지만, 단어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부모의 제지가 단 몇 초만 늦었더라면 사건의 이름은 ‘유괴 미수’가 아닌 ‘실종 아동 발생’으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경찰청에 따르면 매년 2만 건이 넘는 아동 실종 신고가 접수된다. 대부분은 일시적 이탈이나 가출로 당일 귀가하지만, 매년 수십 건은 미귀가 상태로 장기화된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세계 실종아동의 날’을 맞아 지난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접수된 18세 미만 아동 실종 신고는 총 2만5천692건에 달했다.

대부분은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1천여 명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사례가 해마다 반복되며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실종된 지 20년이 넘은 장기 실종 아동은 1천128명에 이른다.
유괴는 실종의 가장 비극적인 원인 중 하나이며, 두 사건은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미수에 그친 A씨의 범죄는 수많은 다른 유사 사건들이 만들어낸 통계의 이면을 직시하게 만든다.
‘미수’라 해도 처벌은 가능… 그러나 여전한 형량 논란
그렇다면 A씨와 같은 혐의로 기소될 경우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두 가지다. 미성년자 유인 미수(형법 제287조),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성폭력처벌법 제7조).
현행 형법 제287조는 미성년자를 약취 또는 유인한 경우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 조항은 미수범에게도 적용되며, 형법 제295조에 따라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추가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양형에서는 ‘미수’라는 이유로 형이 감경되는 경우가 많아 처벌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지속됐다. 특히 범죄 실행 전 단계인 예비나 음모 행위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그치도록 한 조항도 있어 ‘솜방망이 처벌’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는 죗값이 훨씬 무겁다. 최소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성범죄자 신상공개·전자발찌 부착·성충동 약물치료 등 각종 후속 제재도 이뤄질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상해 여부에 따라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으로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
‘CCTV 바깥’의 안전… 누가 지켜야 하는가
남양주 유괴 미수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첨단 기술만으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가, 그리고 낡은 수법의 범죄에 우리는 얼마나 무뎌져 있는가.
곽대경 교수는 “가해자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신체적으로 제압이 가능하고, 통제하기 쉬운 대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커졌지만, ‘간식 사줄게’처럼 전통적인 유인 수법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반복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현실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의 검거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이지만, 끝은 아니다. 제2, 제3의 A씨는 언제든 우리 아이들 곁을 스쳐 지나갈 수 있다. CCTV가 비추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건 결국 서로를 향한 관심과 사회 전체의 촘촘한 안전망이다.
“간식 사줄게”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닿지 않도록, 오늘 한 번 더 주변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