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의 갈등을 “허세 가득한 권력과 과대망상적인 자본의 유착이 빚어낸 유례없는 촌극”으로 봤고, “자본을 압도하는 권력의 본질을 재확인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 예상했다.(참성단 6월 9일 자 ‘트럼프와 머스크의 촌극’) 그런데 머스크는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머스크가 5일(현지 시간) ‘아메리카당’ 창당을 발표했다.
권력의 제도화가 완성된 근현대에서 권력에 도전한 자본의 성공 사례는 드물다. 일부 성공 사례들은 후진 정치의 결과였고, 결말은 국익과 국민의 반대편이었다. 미디어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정당을 창당해 총리로 장기집권했지만, 그의 재임 시절 이탈리아의 국력과 국격은 쇠퇴했다. 체코의 비리 재벌 안드레이 바비시도 직접 정당을 만들어 총리까지 됐지만, 체코 민주화 과정의 혼란이 빚어낸 예외적인 사례다. 청년 사업가 출신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도 30년 양당 정치 실패로 탄생했다.
미국처럼 수백년 공화·민주 양당 제도가 정착한 나라에서 머스크가 신당 창당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제도적으로 ‘0’에 가깝다. 1992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IT재벌 로스 페로는 전국 투표에서 18.8%를 득표했지만, 선거인단은 단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사업가 머스크는 신당의 목적을 캐스팅 보트로 정했다.
현재 미국 상원은 53석 대 47석(민주당·무소속), 하원은 220석 대 212석으로 공화당이 박빙의 우세다. 박빙의 의석 차이는 미국 양당제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머스크는 아메리카당이 박빙의 차이를 차지해 실질적인 의회 지배자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머스크는 공화·민주 양당을 ‘낭비와 부패로 미국을 파산시키는 일당’으로 싸잡았다.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미디어기업인 ‘X’로 보여준 득표 능력이면, 그냥 허황한 발상은 아니다. ‘반 공화 비 민주’ 유권자로 양당제 의회의 목줄을 쥐겠다는 것인데, 양극화된 양당제에 반발하는 민심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제도적 권력의 약한 틈을 파고드는 정치적 도전은 금력 말고도 제3세력 등 다양하다. 보수정당은 제한적인 지역패권주의자들로 제도적 권력의 정신을 상실했고, 진보정당은 유한한 지지에 고무돼 권력 제도를 뜯어고치려 한다. 우리 정치도 제도적 실패와 본질적 훼손의 흔적이 역력하다. 어떤 도전에 직면해도 이상하지 않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