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팔도반점
고소한 한 입에 매콤함까지 있어 ‘어라’
정통성 벗어나 낯설 뿐이지 이 또한 짬뽕
소고기·해물짬뽕도 있어 든든한 한 상
단무지, 양파 셀프… 내향형 필자 맘에 쏙
‘융합(融合)’이 대세다. 언제부턴가 대학 학과명에 융합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교육 커리큘럼 상당 부분에서 창의와 융합을 강조하고, 융합적 소양을 갖춘 인재가 미래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 이젠 하나만 잘하기 보다는 전체를 통찰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대다. 복잡해진 사회만큼이나 장착해야 할 덕목도 더 복잡다단해졌다.
음식 분야에도 융합의 개념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쉽게 말해 퓨전음식이 호황이다. ‘정통’이라 불리는 기존 조리법의 틀을 깨고 분야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에 없던 음식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햄버거에 빵 대신 밥을 활용한 라이스버거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아예 내용물까지 한식으로 채운 밥버거가 학생들의 든든한 한 끼 음식이 됐다. 며칠 전 국내 유명 햄버거 매장에서 볶음김치가 들어간 신메뉴를 접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혁신과 도전이 세상을 바꾼다.
융합과 퓨전을 쉬운 말로 바꾸면 ‘짬뽕’이다. 일상에서 마치 속어처럼 사용하지만 엄연히 표준국어대사전에 서로 다른 것을 뒤섞는다는 짬뽕의 뜻이 등재돼 있다. 까만 줄만 알았던 짜장면이 붉게 뒤덮이기도 하고 거꾸로 붉은 때깔을 벗어던진 하얀 짬뽕도 흔한 메뉴가 됐다. 아직도 짬뽕은 빨개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짬뽕과 크림이 만났을 때
하얀 짬뽕도 모자라 크림짬뽕이라는 음식까지 등장했다. ‘빨개야 짬뽕이지’라는 보수 진영 입장에선 짬뽕의 정통성으로부터 어긋난다는 점에서 뒷목을 잡을만한 사건이다.
사실 필자 역시 그런 계열이었다. 하얀 짬뽕을 먹는 건 마치 짬뽕을 향한 도의를 저버리는 것만 같아 하얀 짬뽕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융합적 소양을 갖춘 먹보가 필요한 시대다. 짬뽕 대중화를 위해서라면 짬뽕 인프라 확대는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일이다.
안산시 중앙역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팔도반점’의 시그니처 메뉴가 바로 크림짬뽕이다. 마치 까르보나라를 짬뽕 그릇에 담아낸 듯한 비주얼이다. 홍합·오징어·새우 등 각종 해산물과 우삼겹인지 차돌박이인지 헷갈리는 얇게 썰린 고기, 양파와 브로콜리 등의 채소가 면과 함께 뒤섞여 있다. 그 위에 치즈 가루까지 토핑으로 뿌려져 나온다.
크림 베이스라 사실 어느 정도 맛이 예상됐으나 입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고소한 풍미가 바로 훅 치고 들어온다. 음식물을 씹고 넘기기까지 이게 어떤 맛인지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인 맛이다.
일반 파스타와 달리 국물이 넉넉해 크림의 부드러움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크림을 잔뜩 머금은 면발을 한 입 물면 입 안에서 고소함이 사르르 퍼진다. 이런 계열의 음식을 먹다 보면 느끼함으로 물리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매운 듯 맵지 않은 적당한 매콤함이 뒷맛에 살아 있어 느끼함을 잡아준다. 절묘하다.
크짬 원탑 아래 ‘좌소짬 우해짬’
크림짬뽕이 이곳의 시그니처인 건 확실한 듯 싶다. 하지만 크림짬뽕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외에도 기본에 충실한 소고기짬뽕과 해물짬뽕도 떡하니 버티고 있다. 류현진 홀로 고군분투했던 예전의 한화이글스가 아닌 2025년의 한화이글스라고나 할까.
올 시즌 리그를 폭격하고 있는 팀의 1선발 폰세가 크림짬뽕이라면 2·3선발인 와이스와 류현진처럼 소고기짬뽕과 해물짬뽕도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셈이다. 소고기짬뽕은 구수함으로 해물짬뽕은 개운함으로 승부한다. 참 든든한 짬뽕집이다.
이곳은 밥과 단무지, 양파 등이 셀프다. 얼마든지 갖다 먹어도 된다는 뜻. 이런 곳이 참 좋다. 개인적으로 단무지를 많이 먹는 스타일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생긴 단무지를 그것도 몇 점만 내어주는 곳도 있다. 사람 네 명이 갔는데 양파 세 덩어리만 주는 음식점도 경험했다.
필자처럼 MBTI가 I로 시작하는 이들은 단무지를 더 달라고 하기까지 오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모님’이라는 호칭을 스스럼없이 입밖으로 꺼낼 용기도 부족하다. 결국 단념한 채 단무지를 여러 차례 쪼개 먹곤 했다. 그러니 이렇게 셀프로 갖다 먹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반갑겠나. 거기다 밥까지 무한대로 주니 금상첨화다.
크림짬뽕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봤더니 제법 근사한 리조또가 됐다. 짬뽕을 먹은 건지 뭘 먹은 건지 잠시 헷갈리기도 하지만 든든한 한 끼가 완성된 건 분명하다. 빨간 국물의 정통성에선 벗어났으나 이 또한 하나의 훌륭한 짬뽕이다. 왼손잡이 포수도 프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날이 곧 오지 싶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