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자라야 하는데…”
거리·감각 단절시킨채 키워
정서적 유대의 끊김 이어지고
안정감·사회성까지 영향 미쳐
무너지는 교실속에서 아이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요즘 교실은 더 이상 예전의 교실이 아닙니다. 교사들은 수업을 준비해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말합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처한 상황이 너무도 다릅니다.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 감정 기복이 큰아이, 쉽게 분노하는 아이, 말없이 무기력한 아이까지.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그 안은 너무나 다채롭고 복잡한 풍경입니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아이들의 감정을 살피고 충돌을 중재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교과 수업은 뒷전으로 밀리고, 교실은 학습의 장이 아닌 일종의 ‘감정 관리소’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의외로 조용히 규칙을 지키며 생활하는 다수의 아이들입니다. 교실의 소란과 갈등 속에서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고, 예기치 못한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교육의 기본은 ‘모두가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만 지금 교실은 그 기본조차 지키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며칠 전 강원도 영월에서 전통 방식으로 죽염을 만드는 장인 최효승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담소를 나누던 중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엄마들은 강아지는 품에 안고 다니는데 자기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서 멀찍이 끌고 다녀요. 원래 아이들은 엄마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하는데 지금은 그 기본이 사라졌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단순한 풍경 하나를 지적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졌는지를 꼬집는 말이었습니다.
강아지는 가슴에 안고 다니면서 체온과 심장 박동을 전해주는데 정작 인간의 아기들은 유모차에 태워 거리와 감각을 단절시킨 채 키워지고 있다는 것. 그 단절은 정서적 유대의 끊김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아이의 안정감, 자기감(自我感), 나아가 사회성과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교육은 학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의 시작점은 가정이며 사회의 가치관이 그것을 지탱합니다.
우리는 그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요즘 부모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좋은 것만 주는 것’을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환경.
그러나 정작 아이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부모의 ‘시간’과 ‘관심’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겪어주는 경험’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불편한 상황을 함께 이겨내며, 그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교육의 시작입니다.
또한 사회 전체가 ‘성공’만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점점 잊고 살아갑니다. 아이에게는 경쟁력 있는 학습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힘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되돌아봐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은 곧,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부모로서 어떤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지, 사회 전체가 아이를 키우는 일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더 나은 학원이 아닙니다. 더 많은 정보도 아닙니다. 아이가 마음 놓고 기대어 쉴 수 있는 품,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 부족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눈빛입니다. 우리가 교육을 다시 세우려면 교실의 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먼저 가정의 품을 회복하고 사회의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강아지를 안고,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는 시대. 그 안타까운 풍경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박정임 학습코칭연구회 부회장·수학교육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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