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하고 아름다운 합정 인근 카페
상반된 바깥 세상에 마음 불편해져
인간의 삶은 왜 이토록 이기적일까
우리 세대, 지나친 풍요와 편리 누려
불편 선택하니 순간의 행복 찾아와
합정역 인근의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 신간 소설에 관해 인터뷰를 했다. 미래에는 젊음을 사고 파는 시대가 오고, 가난하고 젊은 사람들이 돈이 많은 노인들에게 호르몬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노인의 인생이 행복한가 하면 그 반대다. 겉모습만 젊어진 노인들은 신체 나이만 비슷한 젊은이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해 외롭다. 물질만 사랑하고 내면과 정신의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 세대는 필연적으로 노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과거에 노인들은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삶의 지혜를 노인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세대의 노인은 기술을 다루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전락했다. 삶의 지혜를 추구하는 대신 방대한 정보의 네트워크를 선택한 결과다.
기자와 만난 카페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1층에는 연못이, 2층에는 이끼 덮인 수풀이, 옥상에는 조형물들로 꾸며진 아름다운 산책로로 꾸며져 있었다. 건물 내부에 바다와 숲, 들판을 통째로 들여놓은 듯했다. 테이블 세트는 봄을 닮은 화사한 파스텔톤이었고, 한낮의 여름이었지만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기에 가을바람을 맞듯 쾌적했다. 테이블 위에는 세련된 디자인의 컵에 달콤한 여름과일 에이드가 담겨 있었다. 얼음이 가득찬 음료는 이 계절의 반대편인 겨울의 맛이었다. 카페 안에는 모든 계절의 장점만 모여 있었다. 자연을 닮지 않은 건 오직 날씨뿐이었다.
카페가 세상의 전부였다면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쾌적하고 아름다운 그 공간에서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건 통유리로 된 벽면을 통해 바깥이 보였기 때문이다. 행인들과 동식물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공간에서 내보내는 더운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인터뷰의 내용은 마침 ‘인간이 왜 다른 종의 멸종에도 눈 깜짝하지 않는 이기적인 종이 되어가는가’로 흘러갔고, 그럴수록 그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의 이기적인 면모가 점점 더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결국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모순적인 상황을 지적했다.
“우리가 지금 이 카페에서 누리고 있는 안락한 순간이 소설 속 이기적인 인물들의 모습과 닮아있어요.”
기자는 우리 세대가 지나친 풍요와 편리를 누리고 있다는데 동의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나는 마음이 개운했다. 흉을 보고 나자 마음 속에 쌓인 미움이 사라지듯 우리는 조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출입문을 통과하려는 찰나, 기자와 나는 동시에 멈춰 섰다. 들어갈 땐 미처 보지 못한 글귀가 유리문에 새겨져 있었다. ‘아이와 동물은 출입을 금지합니다(no children, no pet)’.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붉어졌다. 기자는 미리 확인하지 못하고 인터뷰 장소를 정한 데 대해 사과했다.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기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인사를 나누었다.
소설의 결말은, 종국에 고등학생들이 용돈을 벌기 위해 호르몬을 팔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얼마 안되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판다.
인간의 삶은 왜 이토록 이기적이 되었을까? 좋은 건 내가 갖고 나쁜 건 집 밖으로 버리면 된다는 무서운 마음을 어쩌다 당연히 여기게 됐을까? 후손들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폭염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지금 누리는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청소기 대신 빗자루로 바닥을 쓴다. 채식을 하고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렇지 않다. 편리함 중독에서 벗어나 불편을 선택하니 감사가 찾아왔다. 손빨래를 하면서 처음으로 물이 고맙다는 걸 느꼈다. 햇볕과 바람이 고맙고 곁에 있는 존재들이 고마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찾아왔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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