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짬뽕의 복수’

 

침착하게 기본 골랐지만 누가 사줬다면?

전투모 62호보다 더 큰 한 그릇 압도

해물 많아 불안했는데 계산서 보고 안심

장점·개성 없어도 끌리는 것… 그게 매력

푸짐한 양과 매력적인 국물이 일품인 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푸짐한 양과 매력적인 국물이 일품인 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복수(復讐)는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쓰인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은 무려 15년에 걸친 복수를 끝낸 직후 ‘난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라며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복수의 기쁨은 잠시, 그 끝은 결국 공허함이다. 함무라비 법전 식의 복수는 능사가 아니다.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한 모 기자가 복수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인간으로서 가장 어렵지만 가장 고귀한 행위가 용서’라는 말을 남겼다. 용서는 가장 멋진 복수다. 이를 위해 부단히 절제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이 인생이다. 그래도 이따금 복수심이 끓어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땐 머릿속을 비우고 짬뽕 한 그릇에 오롯이 내 몸을 맡겨 보자. 내가 짬뽕이요 짬뽕이 곧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면 시답지 않은 복수심 따위는 금세 사라질 것이다.

최근 포천에서 우연히 간판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 중식당 ‘짬뽕의 복수’. 빨간색 배경에 일반 음식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복수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사나운 맹수가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는 그림까지 곁들였다. 출출하던 차에 간판이 호기심을 자극, 바로 차를 멈춰 세우고 식사 장소로 택했다. 포천에 갔으면 이동갈비를 먹어야지 무슨 짬뽕이냐며 혀를 차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국회방송 ‘영화톡 정치톡’의 한 장면. /방송 캡처화면
국회방송 ‘영화톡 정치톡’의 한 장면. /방송 캡처화면
간판부터 강렬하다. 포천시 신북면에 위치한 ‘짬뽕의 복수’.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간판부터 강렬하다. 포천시 신북면에 위치한 ‘짬뽕의 복수’.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뽕만 12종류…짬뽕백화점

이곳은 음식 가짓수가 굉장히 많다. 특히 짬뽕은 기본 짬뽕을 포함해 차돌·전복·통오징어·통낙지·문어 등 종류만 무려 12가지에 달한다. 이 집의 짬뽕을 논하려면 최소 12번은 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게 있다.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각각의 장단점과 효율성, 가성비 등 따져봐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차돌을 고르자니 통오징어가 궁금하고, 통오징어를 먹자니 전복이 눈에 밟힌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고민 끝에 결국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카라멜 마끼아또보다는 아메리카노가 커피 본연의 맛을 더 잘 보여주는 법. 옵션이 없는 일반 짬뽕을 주문했다. 만약 누가 사준다 해도 일반 짬뽕을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노코멘트’.

이곳의 짬뽕은 더 이상 면류의 하위 메뉴가 아니다. 직제 상 짬뽕류로 독립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곳의 짬뽕은 더 이상 면류의 하위 메뉴가 아니다. 직제 상 짬뽕류로 독립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주문을 마치기까지 과정은 험난했지만 짬뽕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메뉴에서 짬뽕이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을 정도면 짜장면에 비해 월등히 우월적 위치에 있다는 뜻. 이 집 주인장은 ‘짬뽕파’임이 분명하다.

짬뽕의 등장과 함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릇 사이즈부터 어마어마하다. 전투모 62호를 썼던 필자의 얼굴보다 더 크다. 여기에 내용물이 한가득 들어있다. 푸짐한 양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면의 익힘이 이븐하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면의 익힘이 이븐하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가운 새송이버섯.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가운 새송이버섯.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기본이 탄탄한 매력적 짬뽕

새송이버섯이 큼직큼직하게 들어있는 게 포인트다. 눈에 보이는 서너 개가 다가 아니다. 안에 숨어 있는 녀석들도 꽤 많다. 새송이버섯 특유의 물컹하면서도 뽀드득거리는 식감을 짬뽕에서 느낄 수 있어 좋다. 채소도 풍성하다. 넉넉한 양의 청경채와 양파, 당근, 숙주나물이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면의 식감을 아삭함으로 메꿔 준다.

오징어는 거의 ‘파파오(파도 파도 오징어)’ 수준으로 차고 넘친다. 간간이 주꾸미와 낙지도 등장한다. 이쯤 되니 이게 일반 짬뽕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혹시 주문이 잘못돼 삼선짬뽕이 나온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밀려온다. 사실 식사 후 계산을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짬뽕을 먹으면서 이런 쓸데없는 걱정까지 해야 하다니. 부실한 내용물 탓에 이게 도대체 삼선짬뽕이 맞나 싶은 적은 있었으나, 거꾸로 이런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기본기가 탄탄한 짬뽕이다. 그냥 짬뽕이 이 정도면 옵션이 추가된 짬뽕은 도대체 어느 수준일지 궁금해진다.

국물 한 숟갈에 새콤·달콤·매콤함이 다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국물 한 숟갈에 새콤·달콤·매콤함이 다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국물도 훌륭하다.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게 당기는 맛이다. 보통 밥을 부르는 국물이 있는가 하면 밥 없이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 싶은 그런 국물이 있다. 이 집 짬뽕 국물은 후자 쪽이다.

채소와 해산물이 국물에 잘 스며들었다. 입 안에 들어오는 첫 순간 감칠맛이 느껴지는가 싶다가 곧장 달큰함으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얼큰한 맛으로 마무리된다. 국물 한 숟갈에 새콤·달콤·매콤함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뚜렷한 장점도 특별한 개성도 없어 보이지만 묘하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게 매력이다. 이 집 짬뽕, 매력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