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기 추모문학제에 모인 문인과 시민들

 

“눈 부릅뜬 야경꾼이 되고 싶던 공생의 시학”

“프랑시스 잠의 당나귀 돼 소식 듣고 있을 것”

지난 12일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인천작가회의가 주최한 ‘이가림 시인 10주기 추모문학제’에 참석한 유가족 김원옥 시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7.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난 12일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인천작가회의가 주최한 ‘이가림 시인 10주기 추모문학제’에 참석한 유가족 김원옥 시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7.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석류’ ‘2만 5천 볼트의 사랑’ 등 이가림(1943~2015) 시인이 쓴 시들 많이 좋아하시지요.

지난 12일 오후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 3층 다목적실에서 인천작가회의가 주최·주관한 ‘이가림 시인 10주기 추모문학제’가 열렸습니다. 이가림 시인의 부인 김원옥 시인을 비롯한 유가족, 후배 문인들, 시인의 시를 아끼는 시민 등 70여명이 행사를 찾았습니다.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참석자가 많았네요.

주최 측인 이상실 인천작가회의 비대위원장이 행사의 문을 열며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자신이 터 잡고 사는 땅에 꿋꿋이 발을 디디고 서서, 이웃과 민족과 인류의 지평을 열어가며, 생명과 우주의 비밀을 깨달아 깊이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던 이가림 시인. 시인은 눈 부릅뜬 야경꾼이 되고 싶다고 했고, 하등하고 비루한 존재도 애정이 깃든 눈길로 바라보았으며, 공생의 시학을 추구했습니다.

시인이 피안의 세계로 향한지 1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시인을 기억하기 위해 추모문학제라는 주제 아래 모였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고투어린 비망록을 향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어진 김원옥 시인의 인사말이 이가림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이가림 선생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글씨를 쓰지 못하니까, 누워서 핸드폰으로 시를 썼습니다. 그 무렵 쓴 시가 있어요. 20세기 초중반 프랑스에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이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고향이 아마 피레네 산맥 쪽인 것 같습니다. 프랑시스 잠은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같은 당나귀에 관한 시를 썼는데, 윤동주 시인이나 백석 시인이 좋아하던 시이기도 하지요.

이가림 선생이 침상에 누워서 쓴 시 중 하나가 ‘나는 죽어서 프랑시스 잠의 당나귀가 되고 싶다. 짐을 등에 가득 싣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르고 싶다. 생전에 지은 죄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탕감하고 싶다.’라는 내용이었어요. 10년 전에 이가림 선생은 프랑시스 의 당나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피레네 산맥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당나귀가 됐을 겁니다. 당나귀가 귀가 크잖아요. 그래서 인천 소식을 듣고 있을 겁니다.”

지난 12일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인천작가회의가 주최한 ‘이가림 시인 10주기 추모문학제’에서 뮤지션 오혁재가 이가림 시인의 시를 노래하고 있다. 2025.7.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난 12일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인천작가회의가 주최한 ‘이가림 시인 10주기 추모문학제’에서 뮤지션 오혁재가 이가림 시인의 시를 노래하고 있다. 2025.7.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2부 행사에서는 이찬규 숭실대학교 불어불문과 교수가 불문학자로서 이가림 시인을 주목하는 내용의 짧은 강연을 했습니다. 이성천 경희대 교수는 시인과의 추억담을 얘기했습니다. 이어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보여주는 슬라이드를 상영했는데, 눈물을 훔치는 참석자들도 보였습니다.

시인들의 이가림 시 낭송과 뮤지션들의 공연으로 3부를 장식했습니다. 윤효(‘솟대’), 정민나(‘찌르레기의 노래 3’), 이기인(‘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원석(‘투병통신 1’), 이설야(‘아담 옷수선 가게’), 이병국(‘빙하기’), 정우신(‘2만 5천 볼트의 사랑’)을 비롯한 시인들은 저마다 이가림 시인에 대한 기억을 짤막하게 말하곤 각자 꼽은 시인의 시를 낭송했습니다.

이설야 시인은 이날 낭송한 시 ‘아담 옷수선 가게’를 지난 2022년 경인일보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 시리즈에서 소개(2022년 11월10일자 10면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12)] 이설야 시인-이가림 시집 '바람개비 별'

[내가 추천하는 인천책·(12)] 이설야 시인-이가림 시집 '바람개비 별'

은 리본의은박 종이에 싼 국화꽃 한 송이문고리에 비스듬히 꽂혀 있다오래전, 이가림 시인은 동네 수선집 앞에서 '검은 리본'과 '국화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슬픔은 그 깊이를 잴 수가 없다. 조문과 애도는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조문과 애도를 표현하는 두 가지 상징은 검은 리본과 국화꽃 한 송이다. 그 두 단어 앞에서 나는 잠시 당혹스러웠다. 얼마 전 일어난 믿을 수 없는 10·29 참사 때문이다. 엄청난 인재에 정부는 책임지지도 반성하지도 않았고 희생자는 사망자가 되었으며 애도할 이름과 영정사진과 위패는 보이지 않았다. 더 해괴한 일은 검은 리본을 거꾸로 달라하고, 애도 기간마저 정해준 사실이다. 그 많은 혼령은 이름과 얼굴이 사라진 채 지금 어디에서 헤맬까. 세월호 참사를 겪은 청소년이 청년이 되어 다시 이태원 참사를 겪게 된, 이 반복된 비극에 대해 왜 언론은 진실의 자물쇠인 언어의 '입을 꼭 다문 채' 리본을 거꾸로 매달고 있는가. 왜 정부는 국민을 구조할 시간에 사라졌는가. 지금 국가는 있는가. 우리의 안녕을 묻고 또 물어도 대책 없이 위험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가림 시인의 유고 시집 제목처럼 '잊혀질 권리'가 고인에게도 있겠지만, 억울한 죽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입선인하대 조교수 되면서 인천 정착투병전 6번째 시집 '우현예술상'이가림(1943~2015) 시인은 만주 열하(熱河)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시절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선생의 영향을 받아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돌의 언어'로 가작에 입선했고,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빙하기'가 당선됐다. 첫 시집 '빙하기' 이후
https://www.kyeongin.com/article/1614337

이가림 시인의 큰 사위 현진길 씨도 ‘귀가, 내 가장 먼 여행 2’를 낭송했습니다. 뮤지션 오혁재, 손병걸, 전유동의 공연도 각각 이어졌습니다. 오혁재는 시인의 시 ‘순간의 거울’을 노래했고, 전유동도 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를 노래로 지어 이날 처음 불렀습니다. 손병걸 시인은 이가림 시인이 생전 좋아한 노래를 불렀고요.

김원옥 시인 얘기처럼 ‘당나귀가 된 이가림 시인’에게 충분히 들렸을 만큼 충실하게 그를 기억한 행사였습니다.

이가림 시인.
이가림 시인.

이가림 시인은 1943년 만주 열하 태생으로 전주에서 성장했습니다. 본명은 이계진입니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빙하기’가 당선되며 등단했습니다. 1973년 첫 시집 ‘빙하기’를 낸 이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순간의 거울’ ‘내 마음의 협궤열차’ ‘바람개비 별’ 등 시집과 산문집 ‘사랑, 삶의 다른 이름’ ‘미술과 문학의 만남’ 등을 25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정지용문학상(1983), 편운문학상(1996), 펜번역문학상(2009), 영랑시문학상(2012), 우현예술상(2012) 등을 수상했으며 파리7대학 객원교수와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인하대 문과대학장을 지냈습니다. 한국불어불문학괴장과 인천작가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82년 인하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인천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인천에 대한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