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하미’ 베트남 전쟁 학살 다뤄

정의롭지 못한 힘 의한 망각 불공정

위령비, 추도 대신 사죄 있어야 마땅

피해자 객석에 있다는 설정 ‘현재성’

전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지 물어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하미’(김수정 작·연출, 7월5~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목의 하미는 마을 이름이다. 하미 마을은 퐁니·퐁녓 마을과 함께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곳이다.

연극 하미에서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을 현재화하는 장치는 평화여행이다. 평화여행단이 2025년 2월 베트남 다낭으로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평화여행은 하미 마을 위령비, 밀라이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여정을 포함하면서 베트남 전쟁을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만나게 한다. 그렇게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이 펼쳐지게 된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 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모래와 뼈가 뒤섞이고 불타는 집 기둥에 시신이 엉겨 붙고 개미들이 불에 탄 살점에 몰려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불태풍이 휘몰아치는 것보다도 더 참혹했다’. 하미 마을 위령비 비문의 일부이다.

현재 이 비문은 연꽃 비석으로 가려져 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단체에서 위령비를 짓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후원금을 전달해 위령비를 세우게 된다. 2000년 8월 가을에 비문이 완성된다. 참전단체에서 하미 마을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내용의 비문 수정을 요구한다. 마을 주민들은 수정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대신 연꽃 비석으로 비문을 덮는다. 2025년 현재까지 비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평화여행단이 본 위령비는 연꽃 비석이다. 언제 연꽃 비석이 열려 2000년 8월 가을에 새긴 그 비문을 읽을 수 있을까.

어떤 망각은 불공정하다. 정의롭지 못한 기억의 힘에 의한 망각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기억이 기록으로 남는다면 그 기록이 억압하는 망각은 얼마나 잔혹한가. 바로 하미 마을의 위령비가 그러하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해야 마땅할 위령비가 산 사람의 면죄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때 그 망각은 불공정하다. 하미 마을의 위령비에는 추도의 문법이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는 “미안하다는 말뿐이에요”라는 연극의 대사처럼 사죄의 문법이 있어야 마땅하다.

연극 하미는 베트남 전쟁 종전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연극으로 떠나는 평화여행은 망각하지 않으려는 저항이다. 불공정한 망각에 대한 저항의 기록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로도 향하고 있다. 학살 사건의 피해자가 객석에 앉아 있는 설정으로 관객은 피해자의 위치로 이동한다. 단지 슬픔이나 연민에 그치지 않고 불공정한 망각에 저항하는 위치로 이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잡아야 하는 현재의 사건으로 공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퐁니·퐁녓 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1심에 이어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 중이다.

동시에 전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암전의 길이에서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기관총 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그 긴 암전 시간 동안 관객은 무엇을 상상했을까. 지나치게 길게 설정한 어둠 속에서 관객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나는 지금 안전한 장소에 있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을까. 여기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가 아니라서,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연극의 대사처럼 “우리는 정말 평화로운가요?”라고 물어봤을까. 또 아니면 우리가 전쟁 가능성이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위기를 느꼈을까.

다가오는 7월27일은 한국전쟁 정전일이다. 올해로 72주년이다. 전쟁이 일어난 날은 기억하면서 전쟁이 끝난 날은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베트남 전쟁 종전을 기념하는 공연을 보면서 한국전쟁 종전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이상한 일 아닌가.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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