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에 경인일보 1면에 ‘인천의 시(詩), 인천을 짓다’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한 적이 있다. ‘인천의 시’를 선정해 그 시를 소개하고, 풀이하는 글을 짤막하게 덧붙이는 형식이었다. 그때 몇 줄 안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인천의 시’가 말하는 장소를 찾아가곤 했다. 시의 현장에서 시인의 언어를 직접 느끼기 위함이었는데 당시 가 본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데가 인천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입구 ‘수원집’이다. 밴댕이 안주가 전부인 선술집이었다.
이가림의 ‘밴댕이를 먹으며’를 따라서 간 인천역 건너편 수원집. 주인장 부부는 새벽마다 연안부두에서 물건을 가져와 손질을 해 그날그날 팔았다. 강화도 특산물인 밴댕이를 인천역 앞에서 팔면서 가게 이름을 수원집이라 한 사정이 있었다. 처음 가게를 낼 때 부인이 세무서에 신고를 하러 갔는데, 가게 이름을 뭐로 할 거냐는 세무 직원의 말에 답을 하지 못했다. 간판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직원은 “아주머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부인은 수원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수원집이 되었다.
‘밴댕이를 먹으며’는, 영종도에서 막배를 타고 온 중년 사내가 애인에게 밴댕이를 한 움큼 깻잎 초고추장에 싸서 입에 넣어 주는 것을 보고는 사랑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인 자신의 모습에 눈길을 돌린 작품이다.
이가림의 시 중에는 인천과 인천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게 여럿이다. 갯벌에 붉게 펼쳐진 나문재밭에서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길어 올린 ‘나문재’, 서울 인천 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온갖 군상들이 부대끼며 살아내는 뜨겁고도 아픈 이야기를 지하철 전류에 빗댄 ‘2만 5천 볼트의 사랑’ 역시 인천 시로는 압권이다.
어제가 이가림 시인의 10주기였다. 이가림이 없는 지금 수원집도 문을 닫았지만, 그의 시가 있어 밴댕이를 입에 댈 때마다 수원집이 생각나곤 한다. 1994년 5월 9일 인천 부평의 물다방에서 인천민예총 창립을 준비하던 7인 모임에 그도 있었다. 그는 인천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 눈을 맞춘 인천 시인이었다. 이가림은 말했다. 바라보는 게 시 쓰기의 최초의 단서라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사물을 그윽하고 정다운 애정의 시선으로 깊이 바라볼 때, 거기서 ‘시적 이미지의 씨앗’을 캐낼 수 있다고.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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