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조’ 가계부채 통제 의지 담긴

李 정부의 시의적절한 고강도 대책

반쪽짜리 안되려면 체계 개편 필요

정치적 고려 없이 부채총량 규제할

‘금융안정위’ 신설·독립적 운영을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한국의 가계부채는 2025년 3월 말 기준 약 1천930조원으로 지난 20년간 약 3.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이 2.6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늘어난 부채가 모두 생산적인 분야에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상당 부분은 단지 자산가격 상승으로 귀결됐을 것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BIS 기준)은 2024년 말 약 90%에 이른다. 이는 세계 5위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67%)과 세계 평균(59%)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바야흐로 ‘가계부채 2천조원 시대’가 목전에 있다.

한편 가계부채 급증은 한국 경제의 부동산 의존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건설사가 주택을 공급하면 금융기관은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 흐름을 장기간 창출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신성장 산업 또는 혁신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릴 유인이 사실상 낮다. 특히 장기 저금리와 학군지·역세권 관련 주택 수요가 결합하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까지 확산됐다. 이러한 과열은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겼고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까지 가세하며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는 더욱 어려워졌고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 투기에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고착화하면서 가계부채는 늘었으나 우리 삶은 그만큼 개선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느새 우리 주변은 ‘빚으로 지은 아파트’만 넘쳐나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에어컨 실외기가 촘촘히 달린 아파트 단지를 마주할 때마다 더욱 갑갑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 대책과 부채탕감 정책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마치 수축기혈압 140㎜Hg가 고혈압 위험군을 뜻하듯, 가계부채 비율 100%는 다수의 경제학 연구에서 위기 임계점(tipping point)으로 제시된다. 그 문턱에서 정부는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억제하고 투기 수요를 차단하며 가계부채 총량을 강하게 통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특히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원 이하의 부채를 감면하고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정책은 빚의 늪에 빠진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한편 금융의 약탈적 성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정부 철학으로 해석된다. 그간 금융기관들이 주택담보대출에만 몰두하는 사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향한 자금은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러한 대책은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원회 출범 이후 17년간 유지돼온 금융감독 체계는 이제 개편이 필요하다. 금융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저축은행 사태, 사모펀드 사태, 가계부채 급증 등의 문제가 반복됐으며 일부 금융당국 인사들의 비리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정권 성향에 따라 오락가락 시행된 가운데 ‘빚내서 집 사라’라는 신호를 보내 주택가격이 급등하고 가계부채가 급증한 적도 있었다.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각종 금융기관과 협회의 요직을 맡는 낙하산 인사 관행도 여전하다. 바람직한 방향 중 하나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대신 한국은행 내에 ‘금융통화위원회’와 함께 ‘금융안정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듯, 금융안정위원회는 LTV, DTI 및 가계부채 총량 규제 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정치적 고려 없이 금융안정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금융기관 검사 권한을 갖고 거시건전성 감독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금융기관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금 공급 능력이 있는 중앙은행이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아시아의 종이호랑이’로 불리던 한국 축구대표팀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배경에는 그간 한국인이 관행처럼 자리하던 축구 감독 자리에 외국인 감독인 히딩크에게 독립적인 전권을 부여한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전술을 바꿨다면 다음 단계는 감독교체, 즉 금융감독 체계의 근본적인 전환도 함께 고려해야 할 때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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