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1시20분 경북 안동의 한 여자고등학교. 현관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어 두 개의 그림자는 3층 교무실로 잠입했다.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치는 순간 경보음이 울렸다. 시스템 오작동으로 전직 기간제 여교사와 고3 엄마의 긴 꼬리가 밟혔다. 이들은 2년 반 동안 10여 차례나 학교에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 후에도 지문이 계속 등록돼 있어 가능했다. 조력자도 있었다. 시설관리 직원은 CCTV 저장 기간을 축소하고 일부 영상을 삭제했다. 시험지가 있는 곳의 문을 잠그지 않는 수법으로 이들을 도왔다.
‘전교 1등’ 치트키(Cheat Key·일종의 속임수 명령어)는 빼돌린 시험지였다. 학교 측은 자녀의 성적을 모두 0점 처리하고 퇴학을 결정했다. 상위권을 유지해온 나름의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1등급에 대한 집착이 간 큰 범죄로 이어졌다. 엄마는 학교 운영위원회 위원, 아빠는 의사라고 한다. 딸을 명문대 보내려고 과욕을 부린 탓일 테다.
비뚤어진 자식 사랑은 2018년 서울 숙명여고 정답 유출 사건을 소환한다. 당시 교무부장이던 아버지는 시험지와 답안지를 다섯 차례 빼돌렸다. 쌍둥이 자매는 1학년 1학기 각각 전교 59등, 121등에서 2학년 1학기 문과 1등, 이과 1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미리 받은 답안지를 달달 외워 만든 가짜 성적표였다. 아버지는 ‘징역 3년’ 복역을 마쳤다. 쌍둥이 자매는 기소 5년 만인 지난해 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죄의 무게에 합당한 대가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험지 유출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학교의 관리·감독 체계는 한심한 지경이다. 지난달 전주의 한 중학교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시험지가 여러 장 발견됐다. 기말고사를 이틀 앞두고 발칵 뒤집혔다. 잘못 복사된 시험지를 분쇄하지 않고 그대로 버렸단다. 전 학년의 시험이 일주일 미뤄졌다. 교사와 학원 강사의 공모도 잊을만하면 터진다. 지난해 10월 성남 분당의 한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수학 시험문제가 학원으로 새나갔다. 논란이 커지자 재시험까지 치렀다. 처음이 아니었다. 8개월 전 1학기 기말고사 문제 유출은 피해 회복도 안됐다.
신성한 배움터에서 시험 부정이 버젓이 발생한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사회의 약속을 깨뜨리는 범죄행위다. 묵묵히 공부해온 학생들은 상처 입고 자괴감마저 든다. 성적 지상주의는 통제불능이다. 유해한 어른들 탓이 크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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