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것 같지만 60 넘기 쉽지 않아
몇년 전, 아는 스님이 했던 말이다
옛날 사람 회갑연 연 건 우연 아냐
저승사자 이야기 ‘조 블랙의 사랑’
영화속 끌려간 사람의 나이도 65세
‘조 블랙의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려는 순간, Y(62)가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최근 몸이 점점 안 좋아져 구토를 했고 이어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실려간 Y의 병명은 뇌경색. 병원에 실려가서도 혈압이 너무 높아 며칠 뒤에나 다시 뇌를 검사해봐야 한다고 했단다. 뇌경색은 시간이 생명인데 이렇게 며칠씩 늦춰도 되는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Y는 우리말을 잘 조탁하는 시인(詩人)이다. 다만 자기를 드러내는데 소극적이어서 그의 시를 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산문은 어둡지만 뇌리에 박힐 만큼 강렬하다. 신문사에서 편집부 기자로 일할 때 Y는 순우리말을 섞은 문학적인 기사 제목을 뽑아내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제목은 순조롭게 읽히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무슨 뜻이지?’하면서 갸우뚱하게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독특한 제목은 Y만이 할 수 있는 파격이었다.
필자도, Y도 신문사를 떠났지만 우리는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 필자는 무엇보다 그의 감수성과 통찰력, 이지적인 면모가 좋았다. 정치든, 철학이든, 사상이든,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를 대화를 나누면서 각을 잡아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미혹함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승사자 이야기를 다룬 ‘조 블랙의 사랑’을 보는 내내, 영화 속 슬픔과 Y에 대한 걱정이 오버랩되었다.
“다 오래 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금도 60을 넘기기가 쉽지 않아요.” 몇년 전, 아는 스님이 했던 말이다. 옛날 사람들이 회갑연을 연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필자는 경험적으로 안다. 근래 필자 주변에도 그런 죽음이 계속 들려온다.
L(64)은 지난달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2000년 무렵, 당뇨병을 앓기 시작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투석을 하면서 버티다가 막바지에 주차장에서 쓰러졌다. 그때 뇌출혈을 일으켰는데 의사는 살아날 확률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깨어나서 L은 필자에게 전화를 해왔다. 어눌한 말투였다. 필자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전화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면회를 가겠다고 하고는 뭘 먹고 싶으냐고 했더니 순대라고 했다. 그리고 병실로 순대를 가져가니까 그는 정말 ‘달게’ 먹었다. ‘안 사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 정도의 식욕이라면 좀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열흘 후 L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한 달도 안 되어 세상과 작별했다. L은 필자의 신문사 동기였다.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고 할 만큼 박식했고 낭만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술 때문에 일찍 몸이 망가졌다. 낮술을 먹어 풀린 눈으로 편집국을 오가던 그를 보면서 술이 그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한 사람인 K(63)는 돌연 심정지로 세상을 떴다. 요즘은 본인이 죽어 본인의 부음을 보내는 세상이다. 느닷없이 K가 자기 죽음을 알리는 카톡을 보내와서 깜짝 놀랐다.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너무 건강했던 사람이기에 갑자기 가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필자가 K를 만난 건 35년 전, 인천의 취재현장에서였다. 그는 당시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업체에서 배달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 배달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은 빵을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원래 서민들 먹으라고 우리밀 빵을 만든 것인데 비싸서 정태수(전 한보건설 회장으로 당시 감옥에 있었음) 같은 사람한테나 배달하고 있다”고 허탈해 했다.
근래 부인이 췌장암에 걸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후 술에 절어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곤 자신의 성격처럼 화끈하게(?) 끝을 맺었다.
아! ‘조 블랙의 사랑’에서 저승사자에 끌려간 사람의 나이도 65세다!
/김예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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