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두물머리~애기봉~조강
양수리서 서해까지 흐르던 큰강
인공호수처럼 일직선이 된 물길
자연스럽게 제자리 찾아 줬으면
나룻배와 여객선 다니는 날 오길
한강은 한가람에서 유래하였다. 한은 크고, 가람은 강을 의미한다. 한강은 삼국시대부터 대수·아리수·욱리하·한산하·북독이라 표기하였다. 특히 한수 이남, 한수 이북처럼 땅을 두고 한수라 불렀다. 한강은 한양도성 지나는 구간에서 경강이라 하였다. 수선전도에서 한강은 수도의 강, 서울의 강이라고 했다. 목멱산 기슭 아래 큰 강이 경강, 용산이 있는 만초천 하류가 용산강, 한양도성 서남쪽 커다란 밤섬이 있던 서강을 합쳐 삼강이라 했다.
한강 물길은 자연 그대로 굽이굽이 흘렀다. 한강은 모든 지방하천과 합류하였다. 하지만 폭은 좁고, 한강 물은 깊었다. 그곳에 나루터와 모래사장 그리고 정자가 있었다. 한강 주변엔 미사리부터 양화나루터까지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아름다웠다. 또한 한강 물길 따라 많은 섬들이 서로를 뽐냈다. 송파강과 삼전도 지나 저자도, 광나루와 송파나루 지나 샛강 사이에도 섬이 있었다. 수만 년 흘렀던 한강 따라 모래강변에 섬과 함께 금빛 모래가 즐비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정조의 원행길 배다리를 놓았던 노들 백사장 노들섬, 두물머리에서 내려온 나룻배가 정착하는 한강 위 보석 같은 밤섬, 너섬이라 불린 샛강이 있었던 여의도는 도성 밖 작은 섬이었다. 작은 해금강이라 불린 밤섬에도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다. 서강 지나 양화진 가는 물길에 선유봉이라 불렀던 선유도가 강물 위에 서 있었다. 신선이 노니는 봉우리가 선유봉이다. 그곳에 유유자적 뱃놀이하던 사람과 겸재 정선처럼 그림을 그렸던 사람 그리고 글 쓰는 해외 여행객도 오갔다.
겸재 정선은 안양천과 양천강이 만나는 공암나루터에 5년 동안 양천현령으로 살았다. 궁산 기슭 양천향교 위 소악루에서 한강 따라 수많은 그림을 그려 50년 지기 이병연의 글과 함께 남겼다. 목멱산에 해 뜨는 새벽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 안산 봉수대에 불 켜지는 저녁 ‘안현석봉(鞍峴夕烽)’, 양화나루에서 김포와 강화를 오가는 모습을 그린 ‘양화환도(楊花喚渡)’, 행주산성 아래 행호에서 고기 잡는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 양화진과 공암진 사이 떠 있는 아름다운 ‘선유봉(仙遊峰)’, 양천과 김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개화산 ‘개화사(開花寺)’ 그림이 전해 오고 있다.
겸재 정선은 임진강과 만나는 교하와 조강을 넘나드는 뱃길에서 경기 옛길을 외국 사신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강 물길 풍경을 그려 선물하였다. 그는 한강을 지킨 행정가이자 작가 겸 화가로 그림을 팔기까지 한 큐레이터였다. 한강은 태백산에서 시작해 양평 두물머리에서 김포 애기봉과 개풍 후릉 사이 조강까지 흘렀다. 양수리에서 서해까지 흐르던 큰 강이 바로 한강이었다.
인공 호수처럼 폭이 넓고 일직선이 되어 버린 한강 물길을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되찾아 주면 좋겠다. 한강 물길 나루터마다 배가 다니고, 금빛 모래사장에서 강수욕을 하며, 천연기념물 수달이 밤섬을 오가는 물길이 그립다. 경기와 서울의 경계인 창릉천도, 한강 하류에 형성된 장항 습지도 이제 자연에 맡겨보자.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교하에 자라와 두루미가 노닐고 웅어와 황복도 왕래하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후손에게 남겨 주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물길처럼 나룻배와 여객선이 조강까지 다니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