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8월 28일 현재 174명의 부랑아를 수용하고 있는 선감학원의 운영 실태는 입에 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육지와 동떨어진 도서라는 점 때문에 부정 적발이 쉽지 않았다. (중략) 원생들은 헐벗고 배곯고 교육보다는 강제 노역에 혹사당했다. 일부 원생들은 뭍으로 탈출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한 참사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1956년 8월 31일 보도된 기사다. 윤상철·이창식(전 경인일보 편집국장) 기자는 당시 선감학원의 참상을 처음 폭로했다. ‘기아에 떠는 원생’이라는 제목으로 국가권력의 인권유린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 안산 선감도에 설치됐던 명목상 아동·청소년 감화원이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회사업협회를 내세워 기부금 50만원으로 섬 전체를 매입했다. 소년들을 부랑아로 낙인찍어 강제 수용했다. 일제가 만행을 저질렀던 지옥은 1945년 해방 때 폐쇄돼야 마땅했다. 하지만 소년들은 1982년까지 40년 넘게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1946년 선감학원 운영권은 경기도로 이관됐다. 공권력의 납치는 계속됐다. 6~10세 내외 아이들 5천여명이 외딴 섬으로 끌려갔다. 불법감금, 강제노역, 구타, 가혹행위, 암매장이 자행됐다. ‘소년판 삼청교육대’로 불린 이유다.

2016년에서야 경기도는 불편한 역사를 바로보기 시작했다. 진상조사와 유해발굴이 진행됐고, 매년 10월 추모제도 연다. 2020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첫 공개사과를 했다. 2년 뒤 김동연 지사도 책임을 통감했다.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수용자 전원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그해 생존 피해자들은 국가와 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달 법원은 13명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33억1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정부와 도는 상고장을 냈다. 기어이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간 것이다. 피해자와 유족은 재판과 행정의 2차 가해를 중단해 달라고 호소한다. 다른 10여개 소송도 긴 싸움이 될까 불안하다.

선감학원은 명백한 국가폭력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짓밟혔다. 금액으로 환산 불가한 지옥생활이었다. 폐쇄된 지 43년, 국가의 첫 사과와 제대로 된 회복은 아득하다. “우리는 그 시절 선감학원이라는 섬에 버려진 또 다른 소년들입니다.” 한 피해 생존자의 절규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응답할 차례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