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유배중인 자신에게 ‘모기’

빗대어 공감, 이해·용서로 풀어내

변상벽 ‘어미 닭과 병아리’ 생생 묘사

보잘것 없는 존재에도 ‘사유’ 담겨

깊은 공감 끌어내는 ‘근원’ 아닐까

변상벽作 ‘모계영자도’(18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93.7×42.9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변상벽作 ‘모계영자도’(18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93.7×42.9cm).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미술사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미술사

밤마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여름이 찾아왔다. 물렸을 때의 따가움과 가려움, 짜증스러움은 이 작은 생물을 만국 공통 인류의 적이라 불릴 만하게 한다. 사실 모기를 미워하는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옛사람들 또한 모기에 대한 분노를 담아 글을 남기며 속풀이를 하곤 했다. 숙종임금은 “널 부르는 이도 없는데, 까닭 없이 찾아와 뾰족한 침으로 침상의 베갯머리를 찌르느냐”고 했고(‘열성어제’ 권10), 김성일(金誠一)은 ‘학봉집’에서 아무리 팔을 휘저어 쫓아도 자꾸 나타나 결국 물고야 마는 모기의 성가심을 탄식했다. 남구명(南九明)은 피를 빠는 모기의 행태를 탐관오리에 비유하기도 했다(‘우암집’ 권1). 이렇게 보면 모기라는 존재는 비록 매우 작지만 사람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만드는 ‘갑 중의 갑’이라 할 수 있으니, 결코 하찮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얄밉기 그지없는 모기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약용(丁若鏞)이다. 그는 모기가 다가올 때 ‘윙~’하는 소리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불안을 시작으로 잡으려다 오히려 자기 뺨만 때리게 되는 좌절감, 물린 뒤 ‘부처의 머리’처럼 울퉁불퉁 부어오른 살갗, 도대체 저놈들은 왜 저럴까 하는 의문,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기의 처지를 유배 중인 자신의 삶에 빗대어 공감하고 끝내 이해와 용서에 이르기까지 모기에 관한 온갖 감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다(‘여유당전서’ 권4).

정약용의 글은 단지 모기에 대한 쓰라린 경험담이 아니라 그가 사물과 현상을 대할 때 취했던 치밀한 관찰과 철학적 진지함,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 만물을 이해하고자 했던 그의 학문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그림 감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근기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다양한 소재의 서화를 접하며 60여 편이 넘는 감상문을 남긴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다.

그가 감상한 작품 중 하나는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어미 닭과 병아리’(母鷄領子圖)였다. 정약용은 이 그림을 보고 “병아리들은 어미를 에워싸고 솜처럼 노란 깃털을 뒤집어쓴 듯 어수룩하고 귀엽네. 두 마리는 어미를 따라가며 무슨 일로 저리 급하게 뛰는지, 한 마리는 어미 등에 올라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구나”라고 표현하며 그림 속 병아리들의 생김새와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마치 눈앞에 그 광경이 펼쳐진 듯 생생한 묘사를 남겼다. 그가 본 그림의 소재는 알 수 없지만 다행히 같은 제목의 그림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기에, 원그림의 구성과 표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약용이 화가의 정교한 솜씨에서 느꼈을 경이로움 또한 우리에게 전달되는 듯하다.

이처럼 조선 사람들의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는 마치 평행이론처럼 그들이 경험한 유·무형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비록 모기나 병아리처럼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관한 내용일지라도 그 속에는 진지한 태도와 따뜻한 시선, 날카로운 관찰, 치밀한 기록과 사유가 담겨 있다. 이러한 면모야말로 조선 사람들과 오늘날 우리의 삶을 연결 짓고 시공간을 넘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근원이 아닐지 싶다.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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