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에

한국도 쌀·쇠고기 시장 개방 우려

연료용 곡물 수입 협상 전략 방침

미국 정치 지형상 실효성 물음표

경기도내 한 미곡종합처리장(RPC) 창고에 올해 수매된 벼 포대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2024.11.13 /경인일보DB
경기도내 한 미곡종합처리장(RPC) 창고에 올해 수매된 벼 포대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2024.11.13 /경인일보DB

미국이 관세 카드로 협상 테이블을 쥐고 흔들면서 쌀 주산지인 경기도 농민들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에 합의한 직후 한국 역시 쌀과 쇠고기 시장 개방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27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지난 25일로 예정됐던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쌀과 쇠고기를 민감 품목으로 분류해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협의 일정을 미루면서 일본과 달리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농산물 개방 기조가 협상 지연의 한 배경이 아닐까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특히 쌀 주산지인 여주와 이천 지역 농민들은 정부 발표보다 국제 정세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0년째 여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전용중씨는 “한미 FTA 때도 그랬고 우루과이 라운드 때도 협상마다 농업은 늘 내주는 쪽이었다”며 “정부가 쌀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해도 결국은 딴 걸 내주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 온 게 그동안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쌀과 쇠고기를 제외하는 대신 옥수수, 사탕수수 등 연료용 곡물 수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절충 카드지만 미국의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과연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허윤 서강대 세계무역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중서부 곡물 벨트에 속한 농민들”이라며 “쌀이나 쇠고기 문제는 미국 내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실익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우선한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도 미국과의 농산물 협상에서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입 총량은 그대로 둔 채 미국산 쌀의 비중만 확대하는 방식이었다. 일각에선 우리 정부도 일본과 유사한 방식의 ‘조건부 확대’로 접근할 가능성이 제시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이 연간 70만t의 쌀을 수입하면서 국가별 쿼터 중 미국 몫을 늘린 사례처럼 한국도 전체 수입 규모를 유지한 채 미국산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국내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쌀과 쇠고기 외 품목에 대한 부담도 가볍지 않다. 미국은 최근 사과 등 과일류의 수입 확대도 요구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당장의 개방보다 앞으로 이어질 협상에서 식량 주권을 어떻게 지킬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기후위기 시대에 모든 나라들이 겪는 생산의 불안정성 문제는 사실 한·미·일을 떠나서 모두에게 지금 중요한 현안”이라며 “식량 안보와 주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국민 먹거리를 보장하지 못하면, 앞으로 이어질 협상에서 이런 전례가 쌓여 농업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2면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