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연구인명록 내 촘촘한 기록

한글·한자·일본 문자 혼재된 형태

예일대 전혜성 박사, 전산화 힘 써

학문 데이터화 기반… AI 모델로

미래까지 담은 ‘인명록’이란 과거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어떤 미래는 과거에 조용히 숨어 있다.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출간한 ‘한국학연구인명록’(Directory of Researchers in Korean Studies)을 펼쳤을 때 떠오른 생각이다.

전공 분과가 나무이자 숲이라면, 한국학은 그 범위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다는 점에서 바다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연구원이 개원 1년 만에 내놓은 이 한국학연구인명록은 단순한 명단을 넘어 한국학이라는 바다로의 항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나침반이자 항해도였다.

흥미롭게도 이 작업은 연구원 설립 전, 준비위원회 시절부터 구상되었다. 한국학 역시 사람의 일이기에 한국학을 실천하는 사람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학연구인명록에는 연구자의 이름, 전공, 성별, 학력은 물론이고 저서, 번역서,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촘촘히 담겨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연구자와 기관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 야심만만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인명록을 만드는 일은 지금도 쉽지 않다. 누구를 포함할지, 어떤 항목을 담을지 등 수많은 결정을 한정된 시간 안에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정보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우편으로 설문을 보내고 회신을 받아 정리하는 방식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 2천200명에 이르는 한국학 연구자가 한데 모였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한국학이라는 미지의 바다에 첫 항해선을 띄운 셈이다.

당시 ‘한국학’은 이렇게 정의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한국 민족문화의 제반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모두 담고자 하는 포부가 드러난다.

그리고 한국학연구인명록은 단순한 명단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생애사적·서지적 정보가 풍부하게 담긴 자료이자, 한글·한자·일본 문자·알파벳 등 다양한 문자가 혼재된 보기 드문 형태였다. 정보과학적 측면에서도 매우 도전적인 원천자료였다.

이 자료의 독특함에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예일대 비교문화연구소의 전혜성 박사다. 그는 한국학연구인명록이 데이터베이스화된다면 한국학 자료의 전산화에 큰 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예일대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한글·한자·영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그 결과 한국학 연구자들의 성별, 전공, 출신 지역, 연구 주제와 언어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데이터(data)는 정보(information)로, 다시 분석과 해석의 토대로 전환된 것이다.

반 세기 전부터 한국학 자료의 전산화를 위해 노력해온 연구원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방대한 정보를 디지털화해 왔고 한국학 관련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한국학데이터플랫폼(Korean Studies Data Platform)’도 공개하고 있다.

최근 연구원은 그동안 축적해온 한국학 관련 데이터를 카카오의 AI 모델인 ‘카나나’의 학습 데이터로 제공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AI 모델이 한국학 관련 자료를 학습하면서 한국형·한국어·한국 문화에 친숙한 AI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역시 한국학의 전환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다. 새로운 환경과 시대 속에서 인명록을 모았던 정신이 진화하고 있다 할 수 있다.

한국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낸 한국학연구인명록은 그 자체로 한국학의 범위와 상상력을 가늠하게 해주는 이정표였다. 한국학은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더 넓어졌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는 한국학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을 잊은 채, 생산된 자료와 데이터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도 우리는 한국학이라는 바다를 건넌다고 나는 믿는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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