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들 살해, 동서고금 흔치않아
정신의학 용어로 ‘필리사이드’ 5개 유형
그중 특히 극단적인 것 ‘배우자 복수형’
재발 방지 국가·사회 무엇을 해야 할까
한밤중에 갑자기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총기 발사가 있었고 경찰특공대까지 출동했단다. 평상시 같으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길 건너편 단지의 딸아이가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연신 메시지를 날렸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에 사는 회사 직원이 쓰레기 버리러 내려갔다가 총기사건이라는 말에 무서워서 얼른 들어왔다고 했다. 범인이 총을 소지한 채 도주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서울에서 경찰에게 체포될 때까지 적지 않은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불안에 잠을 설쳤다.
지난 20일 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온갖 말들이 구름 위를 떠돌기 시작했다. 범인의 전 부인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유명 미용그룹의 대표라는 사실이 양력(揚力)을 가했을 것이다. 언론보도도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그렇지만 정작 범행 동기는 여전히 모호하다. 아버지가 경찰 조사에서 뱉어낸 조각조각의 진술로는 이면의 가려진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불편한 얘기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동서와 고금의 역사를 통해서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공통으로 기억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 사건도 아들인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끝내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나님은 아비가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기 직전 천사들을 보내 멈추게 함으로써 창자를 끊어내는 비극의 전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260여 년 전 이 땅에서 발생한 영조와 사도세자 사건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아버지인 임금에 의해 아들인 세자가 뒤주 속에 갇힌 채 죽어간 이 유례없는 사건에 대해 당대의 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은 민감한 내용을 생략한 채 그저 ‘사도세자가 훙서(薨逝)했다’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세자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영조도 더 이상 속내를 감출 수 없었다. “어찌 30년에 가까운 부자간의 은의(恩義)를 생각하지 않겠는가”라며 애통해했다. ‘사도(思悼)’라는 시호도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깊이 애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고의로 살해하는 행위를 ‘필리사이드(filicide)’라고 한다. 라틴어로 아들과 딸을 뜻하는 필리우스(filius)와 필리아(filia)에 죽임을 뜻하는 ‘사이드(-cide)’를 붙여 만든 범죄심리학과 법정 정신의학 분야의 전문용어다. 미국의 저명한 법정 정신과 전문의이자 교수인 필립 레스닉(Philip J. Resnick)이 1969년 발표한 논문에서 필리사이드를 5개 유형으로 분류한 이론은 지금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자녀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살해하는 이타적 유형, 정신병적 상태에서 살해하는 정신병적 유형, 학대나 방임 중 발생한 우발적 또는 사고성 유형,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낙인 등으로 자녀를 살해하는 유형, 그리고 배우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자녀를 살해하는 유형으로 나눴다.
그중에서도 특히 배우자 복수형은 극단적이고 충격적이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자녀가 배우자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왜곡되는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가족 파탄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그 유형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섣불리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장성한 아들을 며느리와 손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작정하고 해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좀 더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가 필요한 사건이다.
필리사이드는 인간의 원초적 공동체라 할 수 있는 가족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범죄다. 사회적 금기와 인간 본능을 거스르는 범죄 이상의 범죄다. 그런 만큼 그 어떤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사회 전반에 오랫동안, 그리고 깊숙이 안기게 된다. 이 염천(炎天) 더위에 참극의 현장을 앞에 두고 질문한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냥 개인의 불운과 불행으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답이 없거나 찾기 쉽지 않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이충환 언론학 박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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