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푹푹 빠지는 농수로… 수백미터 ‘회색빛 슬러지’ 한가득
수십년간 쌓여 지하수 등 오염 걱정
전에 퍼낸 양만 덤프트럭 3대 분량
공장측 “폭우올때 쓸려간 탓” 해명
옹진군, 영업정지·과징금 검토중
“30년 전만 해도 여기서 미역감고 가재도 잡았는데, 지금은 들어가지도 못해.”
뱃길로 편도 4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워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자랑하던 서해 최북단 섬인 백령도 한 마을이 인근 레미콘공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9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면 가을2리에서 만난 주민 A(60대)씨는 마을에서 보이는 레미콘공장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수십 년째 레미콘공장에서 농수로로 레미콘 슬러지를 흘려보내면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레미콘 공장에서 이어진 작은 농수로에 레미콘 성분으로 추정되는 회색빛 슬러지가 수백m 이어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농수로는 마을 인근 산골짜기에서 시작해 레미콘공장을 따라 논과 마을을 거쳐 백령호와 바다로 이어진다. 이 중 레미콘 슬러지가 눈으로 확인되는 구간은 레미콘공장부터 이어지는 300m 안팎 구간이다.
농수로에 들어가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강이 높이까지 발이 푹푹 빠졌다. 원래 있어야 할 자갈과 흙 대신 점토 형태의 회색빛 슬러지가 농수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삽으로 농수로를 파헤치자 시멘트 반죽 형태의 슬러지가 계속 나왔다. 50㎝ 정도 깊이에서야 원래 농수로 바닥으로 보이는 단단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마 지난달 마을 주민 37명이 모여 환경부에 민원을 제기한 후 레미콘공장 측이 최근 농수로를 한차례 준설했다. 이때 퍼낸 슬러지 양만 25t 덤프트럭 2~3대 분량(30~50㎥)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수로 바닥에는 슬러지가 30~60㎝ 깊이로 남아 있다. 농수로 옆으로 단층을 형성한 회색빛 슬러지 높이(약 50㎝)를 통해 최근 준설된 슬러지 양을 가늠할 수 있었다.
주민 A씨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농수로 물로 벼농사를 지었는데, 공장에서 지하수 관정을 파 쓰면서 수량이 줄었고, 현재는 농업용 지하수 관정을 따로 쓰고 있다”며 “벼농사에 쓰이는 지하수가 레미콘 슬러지 침출수로 오염되진 않았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가을2리 마을에서 남쪽 500m 거리에 있는 해당 공장은 1994년 12월 문을 열었다. 몇 차례 증설을 거쳐 현재는 하루 기준 레미콘 85~105t, 아스콘 52~65t을 생산할 수 있다. 레미콘공장과 마을 사이에는 약 5만㎡(1만5천평) 규모의 논과 밭이 있는데, 대부분 쌀농사를 짓고 있다. 여기서 나온 쌀은 전부 정부에서 수매한다.
레미콘공장 측은 슬러지를 의도적으로 버린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비가 내릴 때 우수관로를 통해 쓸려간 레미콘 분진이 오랜 기간 농수로에 쌓여 현재의 상태가 됐다는 설명이다. 레미콘공장 관계자는 “레미콘 ‘회수수’(레미콘 차량·설비 세척 시 나오는 잔유물)는 모두 재처리하기 때문에 한방울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며 “폭우가 올 때 공장 내부에 있는 슬러지가 나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한다. 농수로의 슬러지 잔여물을 추가 준설하고 설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옹진군도 최근 문제를 인지하고 레미콘공장에 대한 처분을 검토 중이다. 옹진군 환경위생과 관계자는 “레미콘공장에 대한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등을 검토 중”이라며 “재발방지 대책을 업체에 요구했다”고 했다.
환경단체는 철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하천이나 토양에 오염을 유발하는 레미콘 물질이 백령호와 바다로 이어지며 해양생태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강력한 처벌, 행정당국의 지속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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