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탓인지 사람들로 도서관 꽉꽉

정신없이 책 구덩이를 파고 있는데

중년 여성 짐보따리 들고 자리잡고

한참 후 화장실에서 몸씻고 돌아와

유랑자의 잠 방해하지 않도록 나와

김성중 소설가
김성중 소설가

전례 없는 폭염 탓인지 요새는 도서관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자리가 없어서 3층, 2층을 돌다가 지하 북카페까지 내려왔는데 운이 좋았다. 두 명이 마주 앉는 큼직한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때마침 짐을 챙겨 나가는 바람에 내 차지가 된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책과 노트를 꺼냈다.

한참 정신없이 책 구덩이를 파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이 내 앞쪽 의자를 가리키며 “여기 자리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손에 든 텀블러를 탁자에 내려놓아 영역표시를 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기까지야 도서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잠시 후 커다란 캐리어와 그 위에 얹은 가방, 매달린 쇼핑백과 에코백까지 무려 다섯 개의 짐보따리를 주렁주렁 들고 아주머니가 돌아왔다. 나는 놀란 티를 미처 감추지 못하고 그녀가 자리에 짐을 부려놓는 것을 바라보았다. 왜 이런 보따리를 들고 도서관에 온 걸까? 더위를 피해서 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인 걸까? 아주머니는 지갑을 꺼내 에코백에 챙긴 후 모자를 고쳐 쓰더니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저거 다 내 짐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도서관에서 ‘책 읽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 좋진 않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은 독서나 공부하는 사람만 이용하는 곳이 아니다. 책이 있는 실내공원에 가깝다고 할까. 어떻게 보면 복지시설 같은 측면도 있다. 아주머니가 이렇게 공공장소에 짐을 들고 온 이유는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수기와 화장실, 시원한 에어컨과 얼마든지 머물러도 되는 좌석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요소도 작용했을 것이다. ‘제 자리’가 마땅치 않거나 편치 않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머물러도 괜찮은 곳은 도서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 후 해가 졌다. 화장실에 간 나는 ‘옷을 입은 채로 하는 샤워’에 가까운 모습으로 몸을 씻고 있는 중년 여성을 보았다. 드러난 살 부위에 열심히 비누칠을 하는 그 양반은 등과 목에 살이 없었고 뼈가 가늘었다. 옆에는 커다란 챙모자가 놓여 있었다. 못 본 척 얼른 자리로 돌아왔다.

개운하게 씻고 마침내 자리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냉방이 너무 세다고 생각했는지 에어컨으로 다가가 온도를 확인하고, 텀블러에 물을 담아와 알약을 꺼내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며 부스럭거렸다. 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처음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네 사람일까? 낮에 집에 있기 어려운 사정으로 도서관에 오는 걸까? 다만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도서관에 와서 책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책에 붙들려 있지 않은 그들은 행동이 부산스럽기 때문이다. 모든 할 일을 마친 그녀는 챙모자를 눌러쓰고, 그 위에 물기를 닦은 커다란 손수건을 베일처럼 드리워 시야를 차단한 후 잠을 청했다.

나는 그녀의 고단한 잠 아래에서 한글자도 쓸 수 없었다. 소설을 쓰려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인간이 내 앞에 나타날 때, 이상한 패배감을 느낀다. 아무리 이야기를 짜도 인간이라는 비밀에 도달할 수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런 패배감과 경이로움 때문에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몸을 씻고 잠을 청하는 사적인 동작을 공적인 장소에서 목격한 나는 그 삶에 들어 있는 이동과 휴식에 대해서, 어쩌면 소지품 전부일지 모를 짐들과 보이지 않는 인생의 짐들에 대해 생각했다. 눈앞의 사람을 스케치하듯 곧바로 메모를 하게 될까봐 내 욕망을 꾹꾹 눌렀다. 대신에 짐을 챙겨서, 내 인기척이 도서관 유랑자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물러나왔다.

/김성중 소설가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