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행정안전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중등부 주제인 ‘사전투표제 폐지’ 언급
“공교육 장을 리박스쿨로… 그런 우려”
정치논란 휩싸일까 놀란 오산시 대회 취소
그동안 주제를 선정해온 오산토론연구회
대회 방식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일축
세계토론대회에서도 이같이 출제한다 설명
오산시 “취지 훼손되는 비판 있어 안타깝다”
극단적인 정치공세만 일삼는 한국 정치가 결국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10년 넘게 만들고 가꿔 온 전통의 학생토론대회를 망쳤다. 지난 19일 예정이었던 올해 오산학생토론대회의 1차 리그가 때아닌 정치공세에 시달리며 무산됐고 본 대회 격인 오는 11월 오산학생토론대회 개최여부까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오산 학생토론대회를 앞두고 중앙정치 한복판인 국회에서 ‘토론주제’를 문제삼은 것이 이 사단을 촉발한 원인인데, 1년 전부터 대회를 준비한 교사와 학생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토론 주제가 논란이 된 만큼, 대회를 진행하더라도 주제를 선정할 때 양 극단의 정치공세를 의식하고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때문에 교사들과 학생들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사라진 토론대회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오산학생토론대회는 1년 동안 2번의 토론리그와 1번의 본 대회로 구성된다. 올해는 5월과 7월에 리그가, 11월에 본대회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열게 된 대통령선거로 인해 5월에 예정됐던 리그가 취소됐고 7월 리그에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실제로 모집인원 108명에 170명 신청이 몰렸고, 150명으로 한정해 초등부 26팀, 중등 20팀, 고등 4팀으로 리그 구성을 마쳤다.
하지만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윤호중 행정안전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신정훈 위원장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이야기 하던 중 “오산시가 사전투표제 폐지 토론대회를 개최한다는 자료를 받았다.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정치적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오산시의 행정이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하자 윤 후보자가 “오산시 공교육의 장을 리박스쿨로 만드는 일이 아닌가 그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사전에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후 애꿎은 정치논란에 휩싸일까 놀란 오산시가 대회를 취소했다.
이로 인해 십수년간 민주시민교육의 장으로 평가받아온 오산학생토론대회는 하루아침에 ‘리박스쿨’로 오명을 뒤집어 쓰며 온라인상에서 각종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청문회에서 문제삼은 토론 주제는 중등부 주제로, ‘본 의회는 사전투표제를 폐지할 것이다’ 이다. ‘사전투표제 폐지=부정선거’라는 정치적 프레임에서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해당 토론대회의 주제를 선정해온 오산토론연구회는 “(토론에) 무지한 사람들이 결정한 이번 사태에 대해 화가 난다”며 토론주제를 제안하고 선정하는 과정과 토론대회의 방식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기한샘 오산토론연구회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제를 선정할 때 뉴스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시의성이 있어야 하고 찬성과 반대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주제를 각자 제안하고 고민한 후 실제로 연구위원들이 모의토론까지 진행하고 신중하게 주제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문제가 된 주제는 정책토론으로, “사실·가치·정책·이해관계자 등 다양한 토론의 주제가 있고, 이 중에서 논제의 다양성을 다룰 수 있는 게 정책 토론”이라며 “찬성과 반대의 논거를 모두 공부한 후 찬성과 반대 모두 입장에서 각각 토론하기 때문에 어느 쪽에 치우친 토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특히 문제 삼은 ‘폐지할 것이다’라는 부분 역시 저명한 토론대회에서도 활용하는 출제 방식이다. 기 회장은 “정책토론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현실과 반대되는 서술을 주제로 놓고 찬성과 반대 양측에서 각 논거의 ‘입증책임’을 해내야 하는 방식”이라며 “이를태면 사전투표제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은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하고,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은 폐지해야하는 이유를 입증해야 하는 논리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간 해당 대회에서 출제해왔던 방식이며 ‘일시적으로 횡재세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것이다’ 등 실제로 이렇게 출제돼왔다. 또한 초창기부터 오산토론대회의 기틀을 잡은 세계토론대회에서도 이같이 출제한다는 게 기회장의 설명이다. 오랜시간 오산토론대회 등을 통해 토론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실제 전국, 세계의 토론대회 등에 참여하는 등 학습성과가 높은 편이다.
그러면서 “초창기 도움을 주셨던 토론 전문가 그룹에서도 타 지역에선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 토론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오산에선 공교육을 통해 토론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게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라 표현했다”며 “세상에는 빨강색과 파랑색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회와) 논의해봐야겠지만 이 주제를 출제할 때 정말 모두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논란이 일면서 11월 대회에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오산시는 “정책논제는 찬반이 팽팽한 내용들을 주로 다루면서 다양한 내용을 스스로 준비하고 말해보는 경험을 통해 찬성과 반대를 모두 이해하는 과정”이라며 “오랫동안 전통있게 운영해온 대회의 취지에 훼손되는 비판들이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11월 대회 등 향후 개최여부는) 교사, 학생들이 원하면 시는 충분히 지원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오산/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