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자유라지만 선택에 자율은 없다

 

8년 준비 거쳤지만 교원단체, 정책 반발 여전

전교조·학부모회 등 ‘즉각 중단’ 입장 발표도

학생·학부모·교사 대상 ‘부정적 인식’ 설문 발표

‘교육격차 심화’ 질문에 89% “매우 그렇다” 응답

보수 성향 한국교총도 제도적 개선 요구 나서

“여건 불비로 난항… 개선 없을 시 폐지 고려”

다수 수강과목 성적유리 ‘쏠림현상’ 발생 우려

학생들 “입시경쟁 여전… 선택은 일부의 특권”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고교학점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전면 시행 5개월이 지났지만 교원단체의 반발은 여전하고 현장에 안착하지 못한 상황이다.

고교학점제는 올해 1학기부터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1학년생에 전면 적용됐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해 고등학교 3년 동안 192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졸업하는 제도로 한국 교육사에 없던 새로운 체제가 고교학점제다.

교육부가 지난 2017년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계획’을 발표한 이후 단계적 운영 등 8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전면 시행에 이르렀지만, 교원단체들은 정책에 문제가 많다며 올해 들어서도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교학점제 폐지 전국교사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지난 6월 서울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교학점제 폐지 전국교사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교원단체들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상대로 고교학점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긴 설문조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사노동조합연맹을 포함해 행복한교육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지난 7월 1일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5월 12일부터 6월 30일까지 학부모와 성인 등 2천48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고교학점제에 대한 학부모 인식 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정책 중단과 교육 주체들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입시제도 개편, 절대평가 도입, 교사 정원 확보 등 근본적 지원과 제도 개편을 함께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고교학점제 운영 방식에 전반적으로 만족하냐는 질문에 ‘매우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이 74%에 달했다. 고교학점제와 현행 입시제도가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89%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보수적 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고교학점제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총은 지난 6월 24일 고교 교사 1천33명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 실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지난 6월 12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됐는데 고교 교사들도 고교학점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올해부터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가 학교에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54.9%가 ‘여러 여건이 불비됐으나, 교원들의 희생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고 폐지를 검토해야 할 정도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답한 이들도 31.9%나 됐다.

그러면서 한국교총은 “결국 고교 교원의 87%는 고교학점제가 학교 정착은커녕 여건 불비로 시행이 어려운 지경임을 토로하는 현실”이라며 “획기적인 여건 개선을 조속히 추진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시 고교학점제 전면 재검토 및 폐지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원단체 측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은 학교 현장에서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고 교원의 업무 부담이 커진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지난 5월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교학점제 폐지를 위한 교사 서명 결과를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홈페이지 캡처
지난 5월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사노동조합연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고교학점제 폐지를 위한 교사 서명 결과를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홈페이지 캡처

고교학점제의 정책 취지는 학생들에게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진로와 적성을 찾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입시 때문에 성적을 잘 받아야만 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과목 대신, 성적을 잘 받기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 교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소수의 인원이 선택한 과목보다는 다수의 학생이 수강하는 과목이 성적을 받기에 유리해 이 같은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교원의 업무 부담 가중도 교원단체에서 계속 제기해 온 문제점이다. 고교학점제는 40% 이상의 학업성취율과 실제 진행한 수업 횟수의 3분의 2 이상 출석하는 등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충 수업 등을 진행해야 한다. 학생들이 보충 수업 등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원 스스로가 오롯이 이를 책임져야 해 어려움이 많다.

학생들도 고교학점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산 지역 고교생들은 지난 7월 21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교학점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학생들은 “고교학점제는 진로에 따라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제대로 작동한다”며 “하지만 과목 개설 수, 교사 배정, 상담의 질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기회의 격차로 이어지고, 결국 고교학점제에서 ‘선택’은 일부 학생들의 특권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고교학점제는 자율적인 과목 선택을 전제로 하지만 대학 입시는 여전히 점수 중심, 정해진 과목 중심의 경쟁 구조를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지난 7월 17일 고교학점제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문위원회가 제시하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중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획기적인 개선을 원하는 교원단체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월 경기도교육청에서 경기교사노동조합,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가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가 ‘2025 고교학점제 전면시행, 충분히 준비되었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경기교사노동조합 제공
지난 1월 경기도교육청에서 경기교사노동조합,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가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가 ‘2025 고교학점제 전면시행, 충분히 준비되었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경기교사노동조합 제공

교원단체들의 반발은 계속된다. 교사노조연맹을 비롯해 전교조, 한국교총 등 주요 교원 3단체는 8월 국회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또다시 발표하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경기교사노동조합 관계자는 “자문위원회에서 나오는 권고안을 교육부가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라며 “교육부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고교학점제를 바꿀지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형욱기자 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