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고기 방어에도… 농민들, 추가개방·과채류 검역 완화 우려
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 의약품 구체적 발표 남아 예의주시
자동차 15% 적용 수출·부품 피해 예상… 업종별로 해석 엇갈려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극적 합의를 이뤘다. ‘25% 상호관세’ 악재는 일단 피하면서 한숨 돌리게 됐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고 반도체와 의약품 등 추후 관세를 정해야 할 분야들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업계별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 쌀·소고기, 최후의 보루 지켜냈지만…다른 품목 개방될까 우려
‘최후의 보루’였던 쌀과 소고기를 지켜냈지만 농민들의 마음은 아직 무겁다. 한미 관세협상 직후 경기도, 인천 지역 농축산업계는 환영과 우려가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31일 오전 대통령실은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농산물 개방 태도를 문제 삼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협상단의 끈질긴 설득 끝에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경인지역 농업계의 시선은 마냥 낙관적이지 않다. 일부 농민들은 이번 합의의 ‘빈칸’이 다른 품목 개방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쌀·소고기 외 농축산물 개방 합의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협상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SNS에 농축산물 시장 전면 개방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양측의 엇갈린 입장 속에 일부 농민들은 쌀·쇠고기를 제외한 콩, 옥수수 등에서 미국산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한다. 정부는 쌀 생산 과잉 해소를 위해 지난 2월부터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시행, 콩·깨 등 타 작물 재배를 장려하고 있지만 길병문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의장은 “미국발 수입 작물 개방 시점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작목을 심을지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서 우리 정부에 문의한 ‘과채류 검역 기준’ 역시 주목할 지점이다. 과채류는 병해충, 인체 유해 가능성 등 검역 사유로 인해 통상 7~8단계 절차를 거쳐야 개방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검역 완화 요구를 수용하면 사과 등 과거 심사가 중단·정체됐던 품목이 빠른 시일 내에 국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검역 기준을 통과하려면 5~10년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된다”며 “추후 검역 조치 완화 정도에 따라 국내 과채류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경제 이끄는 반도체·디스플레이…불확실성 해소될까
경기도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제조업으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단연 압도적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경기도 지역경제 보고서에서 제조업 생산은 올 상반기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미국의 반도체 품목별 관세부과와 한미 관세협상 전개와 관련한 불확실성에 따른 하방리스크도 잠재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반도체는 수요가 견조한 AI 관련 고성능 제품 중심의 생산을 유지하면서 낸드플래시 생산을 소폭 확대하는 등 수출의 호조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관세협상에서는 반도체의 관세 부과에 대해 정확히 정해진 내용은 없지만, 러트닉 장관이 현재 미국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관세 부과를 추진 중인 반도체에 대해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나쁘게 대우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어느정도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이미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등 미국 내 생산 시설 투자에 나서고 있다. HBM과 개선제품인 HBM3E 출시를 앞두고 대미수출 등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경쟁업체들과 동일한 수준이라면 큰 걱정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도 하반기 중 출시 예정인 아이폰 신제품 모든 기종에 최초로 LTPO OLED 패널을 탑재하기로 결정됐다. 이와 함께 디스플레이를 수출하는 중국의 고율 관세부과에 따른 반사효과 등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관세리스크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 이에 디스플레이업계들은 미국 고객사와의 계약 구조 변화 가능성 등을 검토 중이다. 품목별 관세가 확정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인 이유다.
인천지역 제약바이오 업계 역시 품목별로 관세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천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관련 관세가 확정되지 않아 지금 단계에서는 판단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의약품 관세는 2주 내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최악은 피했지만…무관세에서 15% 오르는 자동차·자동차 부품 업계
자동차 업계는 25% 관세는 면하며 최악은 피했다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31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나라가 일본, 유럽연합(EU)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자동차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없어진 데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미 FTA가 제공하던 한국산 자동차 관세 0% 혜택이 사실상 종료돼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4월 2일부터 미국 정부가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올해 상반기 인천지역에서 수출되는 자동차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2%나 줄어든 16억6천900만달러(2조3천215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이 크지 않은 자동차 부품 업체의 피해가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25%보다는 낮아 위안을 삼지만, 성공한 협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미국수출 비중이 큰 한국지엠을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실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에 직접 수출하는 자동차 부품 업계는 수출을 아예 포기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구민주·유진주·김지원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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