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동락원

 

‘아주 매운맛’ 경고에 솔직히 위압감도

뙤약볕보다 더 뜨거운 고추짬뽕 위력

땀에 옷 흠뻑 젖었지만 찝찝함은 없다

못 멈춘 젓가락… 그러나 단무지에 감사

맵지만 맛있는, 완뽕의 자격을 갖춘 ‘동락원’ 고추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맵지만 맛있는, 완뽕의 자격을 갖춘 ‘동락원’ 고추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어렸을 적부터 음악 듣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음의 높낮이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몰랐던 좋은 노래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도 컸다. 라디오에서 혹은 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가 유독 귀에 꽂힐 때가 있다. 과거엔 무슨 노래인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한 번은 어떤 노래인지 너무 궁금해 단골 레코드점 사장님을 찾아가 멜로디를 흥얼거린 적도 있었다. 당시 사장님은 단번에 Ace of base의 ‘The sign’이라고 알려줬다. 그 자리에서 카세트테이프를 사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행복해했던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터치 한 번이면 스마트폰이 어떤 노래든 순식간에 찾아낸다. 참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몰랐던 좋은 노래를 발견하는 기쁨은 여전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단 덜하다. 귓가에 맴도는 그 노래를 알아내기까지 몇 날 며칠을 앓았던 그 인고의 과정이 생략된 탓일까. 빨라지고 편해졌지만 불편했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연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다. 어차피 흘릴 땀, 일정 부분 짬뽕에 할애하는 짬뽕정신이 필요하다. 냉면이나 냉모밀 같은 임시방편으로는 더위를 이겨낼 수 없다. 불볕 더위와의 정면승부다. 정신 무장 차원에서 매운 짬뽕을 택했다. 삼복더위에 몸보신도 모자란데 위(胃)를 혹사시켜서야 되겠냐며 나약함을 보이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안성시 죽산면 ‘동락원’.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안성시 죽산면 ‘동락원’.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맵부심 가득 청년은 어디로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동락원’. 죽산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는 오래된 중식당이 많다. 과거엔 오가는 사람이 많은 터미널 인근이 음식 장사 하기 좋은 자리였다. 매연 냄새가 진동하지만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 하지만 곳곳에 도로가 뚫리고 자가용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터미널 입지는 예전만 못해졌다.

이곳 주변은 전반적으로 한산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점들이 대부분 점심시간대가 지나면 문을 닫는다. 저녁에 짬뽕을 먹을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동락원은 이 근방에서 저녁까지 가게를 운영하는 몇 안 되는 중국집 중 하나다.

고추짬뽕은 메뉴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주 맵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고추짬뽕은 메뉴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주 맵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 집은 일반 짬뽕부터 고기·낙지·삼선·고추 짬뽕 등을 선보인다. 2인분 이상 주문 가능한 쟁반짬뽕도 있다. 땀을 쏟을 각오로 왔기 때문에 지체 없이 고추짬뽕을 택했으나, 메뉴판에 적힌 ‘아주 매운맛’이라는 경고성 단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보통 음식점에서 매운맛을 알릴 땐 고추 모양의 그림으로 매운 강도를 표현하곤 하는데, 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으니 더 큰 위압감이 느껴진다. 직원에게 “많이 맵나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간결했다. “네.”

명품 브랜드를 연상케 하는 의자.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명품 브랜드를 연상케 하는 의자.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매운 음식을 주문할 때면 직원이 “많이 매운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한때는 이런 말을 듣는 자체로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매운맛에 점차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자각한 이후부터는 “못 먹을 정도로 그렇게 맵진 않죠?”라고 먼저 묻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그러나 많이 맵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물러설 순 없다. 호기롭게 고추짬뽕을 주문했다.

매운맛의 범인을 잡았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매운맛의 범인을 잡았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맵지만 맛있는…완뽕의 자격

고추짬뽕의 국물 빛은 그리 빨갛진 않다. 일반적인 짬뽕 국물에 비해 오히려 색이 연하고 주황색에 가깝다. 하지만 매운 음식을 좀 먹어 본 사람은 안다. 빨갛다고 매운 게 아니라 이런 탁한 주황빛 국물이 실제론 더 무섭다는 것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국물 첫 숟갈은 맛있게 맵다. 생각보다 맵지 않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조금 전 맵다는 경고를 날린 직원을 힐끗 쳐다보는 여유도 부린다. 두 번째 숟갈부터 바로 땀구멍이 개방되면서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먹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본격적인 고통이 밀려오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매운맛을 매운맛으로 덮어 가며 쉬지 않고 먹어야 한다. 중간에 끊기면 다시 시작하는 게 배로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했던가. 이날만 세 번 울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했던가. 이날만 세 번 울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 집 고추짬뽕은 많이 맵다. 불닭볶음면의 3배 이상은 족히 되는 것 같다. 검붉은 베트남고추가 강한 매운맛을 낸다. 문제는 맛있다는 점. 면발과 해물도 좋지만 이를 품은 매콤 살벌한 국물이 일품이다. 고통을 알면서도 수저를 내려놓을 수 없다. 쓰라림에 눈물이 흐르지만 맛있어서 미소를 짓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상황이 반복된다.

사투를 펼친 끝에 결국 완뽕에 성공했다. 단무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맛있게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먹는 순간의 고통은 까맣게 잊은 채 식당 문을 나오자마자 바로 또 입맛을 다시게 된다. 뙤약볕에 서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찝찝함은 전혀 없다. 개운하고 짜릿하다. 이게 짬뽕의 희열이다.

기왕이면 ‘정성을’ 다해주면 더 좋겠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기왕이면 ‘정성을’ 다해주면 더 좋겠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