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학문’ 해결 할수 없는 사회문제 늘어

인공지능·빅데이터 등은 사회전반에 영향

기술의 사회적 파급·피해 예측 대응 필요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경쟁력 좌우할 열쇠

전보강 인하대 소상공인 경제생태계연구센터장
전보강 인하대 소상공인 경제생태계연구센터장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첫번째 아이폰을 공개했을 때 세계는 새 전자기기의 등장을 넘어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 가져온 혁신에 주목했다. 아이폰은 전화를 걸고 받는 기능 외 음악, 사진, 인터넷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했고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로 구현함으로써 새시대를 열었다. 이 같은 혁신은 완전히 새 기술이 아닌 기존의 기술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통합한 데서 비롯됐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혁신적으로 조합한 아이폰의 배경에는 디자인, 공학, 심리학, 인문학적 통찰까지 아우른 초학제 융합형 인재로서의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학제 간 경계를 넘어서는 협업이 아이폰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MIT의 방사선 연구소에서는 전자공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철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레이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는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20세기 가장 혁신적 연구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벨 연구소 역시 초학제 융합의 산실이었다. 물리학자, 수학자, 전자공학자, 언어학자 등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트랜지스터, 위성통신 등 현대 기술의 기초를 닦았다.

우리나라도 융합형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시기가 있었다. “인문학 거리와 과학기술 거리의 교차로에서 혁신이 시작된다”는 말이 회자됐고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정부 연구개발(R&D) 정책에서도 ‘융합’은 핵심 키워드가 됐고 2010년대 초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집단기초연구사업 중 초학제 융합형 과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심은 점차 시들해졌다. 융합은 어느새 대학의 인문사회과학 영역의 학과 구조조정 명분으로 소비됐을뿐 연구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재정 지원은 부실했다. 특히 작년 R&D 예산 삭감 당시 초학제 융합연구는 ‘주인 없는 분야’로 여겨지며 더 큰 폭의 삭감을 당했고, 올해는 신규 과제 공모조차 되지 않았다. 정량화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융합 학문 특성상 단일 학문 분야의 성과를 위해 설계된 평가체계에서 불이익을 받고 이를 방어할 정책적 보호막도 부재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금 초학제 융합연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단일 학문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은 산업 구조는 물론 노동시장, 윤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 자체의 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로 인해 어떤 집단이 소외되거나 피해를 입게 될지 예측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더불어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위기, 미·중 갈등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 등 복합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단기적, 개별적 해법으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예컨대 재난 상황에서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 모델이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려면 기후과학자뿐 아니라 복지 전문가, 사회학자, 도시계획가 등이 협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국가 R&D 시스템은 여전히 전통적 학문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융합연구에 대한 제도적 설계와 재정적 지원은 매우 제한적이다. 지금처럼 초학제 융합연구가 ‘경계의 틈새’에 방치된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의 스티브 잡스를 기다리기만 할뿐 스스로는 아무런 토양도 만들지 못하는 셈이다.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초학제 융합연구는 성과 도출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열쇠다. 논문의 성과 지표와 단기 성과 중심의 R&D 평가 체계를 넘어, 인문사회과학과 이공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학문이 협력하고 충돌하며 창의적 해법을 도출할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혁신은 언제나 경계를 넘는 시도에서 시작되고 시대가 요구하는 난제의 해결은 초학제 융합연구를 통해 이뤄졌다. 이를 뒷받침할 국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보강 인하대 소상공인 경제생태계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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