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언어 21세기 들어 과격·저급

경쟁자·상대 정당, 타도할 적 인식

내용 없으니 튀는 표현 유혹 생겨

정치는 겸허한 자세로 성찰하며

스스로 살아남아 존재가치 증명을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내용과 표현의 수준은 너무 절망적이다. 웅대한 국가비전이나 격조 있는 유머와 위트는 고사하고 내용 없는 자기 과시, 상대방에 대한 독한 비난과 조롱, 삭막하고 저급한 단어들이 난무한다. 적이라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하려는 진정성이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웅변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더욱 절망스러운 점은 이런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막는 힘이 되어야 할 국민의 상당수가 오히려 거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말로 하는 싸움이다. 영국 의회를 지칭하는 ‘parliament’가 ‘말하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 단어 ‘parler’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의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기 이전에 의원들이 사회 각계각층의 생각과 이익을 대변하고 논의하는 장소인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폭력이나 강압이 아니라 설득과 대화, 토론으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민주주의와 정치 행위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회의 정치와 민주주의 수준을 알려면 그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살펴보면 틀림없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정치판의 언어가 본격적으로 과격해지고 저급해진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그런 경향에 불을 지폈고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정치인들이 들을만한 이야기를 할뿐만 아니라, 상대를 비판하더라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풍자와 해학을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국회에서는 의원들끼리 휴식시간에 바둑을 두다 크게 지고 있는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라는 뜻으로 쓰던 관용어가 ‘김대중 발언할 시간 다 됐다’였다고 한다. 그만큼 김대중 의원의 발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기대를 품고 기다리게 만들 정도로 내용이 알찼다. 김대중은 누구보다도 오래 정치를 한 인물이지만 적어도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가 상대 정치인을 인격적으로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여의도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홍사덕, 박희태, 박상천 같은 명대변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논평은 매우 날카로웠지만 공격당하는 상대당 의원들도 웃게 만드는 힘과 여유가 있었다.

정치권의 언어가 저급해진 원인 중 하나는 진영 논리가 압도하는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자나 상대 정당도 결국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는 동료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언어가 격해지고 저급해지는 것이다. 또 인간과 정치에 대한 이해가 낮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부족하다. 한마디로 실력이 없는 것이다. 내용이 없으니 튀는 표현으로 언론과 지지자들의 주목을 받으려는 유혹이 생기는 것이다.

능력도 노력도 부족한 정치인들이 대다수인 현 상황에서 작고한 정치인 김상현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큰 교훈이 된다. 전남 장성에서 초등학교만 마치고 상경한 소년 김상현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주경야독 한다. 그리고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그가 가장 열심히 연마한 것이 바로 웅변이었다. 유명 정치가들의 강연장을 쫓아다니며 귀동냥을 하고 ‘세계명연설집’ 같은 책을 보며 피나게 연습했다. 일세를 풍미한 정치인 김상현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김상현의 사례가 웅변하듯이, 우리에게는 적어도 정치인이 되려면 제대로 말을 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분명한 인식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은 욕심과 편견으로 가득 찬 모순덩어리이고 그 인간들로 구성된 정치 세계에서는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사람은 인간과 정치 세계의 이런 특성을 이해하고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성찰하며 바깥세상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부단히 가다듬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주권’, ‘당원주권’이 강조하는 시대에 정치인이 스스로 살아남아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최선의 길이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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