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라진 이름을 품고 있었다. ‘박승극’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건 오래전 고향집 책장에서였다. 먼지 쌓인 문학전집으로만 알던 그 이름을 최근 일제강점기 농민운동 자료 속에서 다시 마주했다. 그는 남상환과 함께 수원의 농민들을 모아 땀 흘린 대가조차 지키기 어려운 현실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질서교란 명목으로 일제에 끌려가 고문과 긴 구금을 견뎌야 했다. 무죄가 나왔을 땐 이미 삶은 무너져 있었다. 해방이 찾아왔지만, 냉전과 반공의 시대는 경계 밖에 섰던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한 세기가 흘러도 외로운 싸움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파주 용주골에서는 성노동자가 무릎을 꿇고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쳤다. 절박한 항의는 형사고소로 번졌고 1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은 곧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다. 사회가 쉽게 편들어주지 않는 소수자, 그들의 목소리는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 밀려난 자들의 외침이 권력에 의해 질서교란이라 명명되는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의문을 자아낸다. 법이 경계를 정하는 순간 그것이 곧 정의가 되는 걸까, 아니면 또 한 번 목소리를 지우는 일일 뿐일까.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말이 얼마나 불안한지 기자가 되어보고서야 알았다. 기자가 된 첫날 만든 이메일 주소가 ‘pi’다. 원주율(π), 소수점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를 떠올렸다. 반올림되는 순간 잘려나가는 목소리들, 그 작은 자리까지 계속 따라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자의 자리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펜의 방향이 선명치 않을수록 기사는 눈에 띄는 ‘소수자 중 다수자’ 쪽으로 기울었다.
선악이 뚜렷하거나 응원을 쉽게 얻는, 입법 문턱까지 오른 목소리들에 기대다 보니 다짐은 흔들렸다.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저널리즘 글쓰기가 ‘목소리를 잇는 일’일 수 있다고 막연하게 긍정한 건 어딘가에서 스쳐들은 이야기들에서였다. 대학시절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라디오 방송은 그중 하나였다.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90년대 방송을 누군가 녹음해 올려둔 거였다. 오프닝 멘트는 강렬했다.
“새벽 세 시, 고공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백여 일을 고공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하지만 그보다 오래 마음에 남은 건 담담한 자기 고백이었다. 몇 년 뒤 그는 인터뷰에서 과거 노동문제를 너무 쉽게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를 낳고 고용주의 입장을 겪으며 발언의 무게를 실감했다는 것이다. 정의감을 담아 전한 말이 경험을 통과하며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까지 인정하고 드러내는 게 정직함일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은 사라진 사람의 진심을 엿보며 떠올렸다.
소수점 아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불안정하고 정의로운 편을 든다는 말은 두렵다. 다만 지금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잘려나가는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는 일일 것이다. 박승극의 이름과 파주 용주골의 외침이 외면된 자리엔 질문이 남았다. 사회는 왜 그들을 지우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답은 아마도 소수점 아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유혜연 사회부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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