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쉴래? 나랑 잘래?… 나랑 먹을래? 나랑 읽을래?
2007년 귀농한 김현숙 대표 ‘쉼’ 공간에 책 넣고 숙박 시작한지 10년 되어가
빼곡한 도서 2천권·음식 도구 이름 ‘행복·지식 나누라는 의미’
“편히 쉬시라” 자리 비우는 주인장에 문도 잠그지 않고 동네 사랑방 역할
지난해 책담회 행사… 앞으로 공연·작가 소통 프로그램 등 계획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하루 종일 책 속에 파묻혀 쉬고, 먹고, 잠드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그 내용이 고스란히 꿈에서 멋진 장면으로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그 꿈이 실현되는 공간이 100년 가까이 된 시골집에서라면 어떨까. 인천 강화도 한적한 마을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농가 주택 책방 ‘국자와 주걱’(인천시 강화군 강화남로428번길 46-27) 얘기다.
책방과 숙박이 결합한 국자와 주걱이 강화도에 문을 연 건 2015년 겨울로,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책(Book)과 숙박(Stay)을 합친 ‘북스테이’가 인기지만, 10년 전만 해도 흔한 개념이 아니었다. 김현숙(64) 대표가 2007년부터 귀농해 살던 곳인데, 그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책을 두고 판매하는 동네 책방이자 누구나 쉬어가는 공간으로 다시 꾸민 것이다.
책방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김 대표의 경우에는 책이 좋아서였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온 국민이 우울하고 힘든 시기가 왔어요. 그분들이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책을 좋아하니까… 그 ‘쉼’의 공간으로 책방을 생각해 꾸미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공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고 믿어요. 한두 명이라도 할머니 댁에 온 것처럼 쉬고, 자고, 책을 읽고, 위로받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국자와 주걱은 책방과 연결된 방 2개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꼭 북스테이가 아니더라도 동네 주민, 관광객이 잠시 들러 책을 읽고 쉬다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반 서점에 가도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국자와 주걱은 집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이다. 김 대표가 취향대로 가져다 놓은 책이 대부분인데, 책장도 모자라 책상까지 빼곡한 책들은 어림잡아 2천권 정도 된다고 한다. 대형 서점처럼 책 검색 기능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책장을 가만히 눈으로 훑다가 생각지도 못한 책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이쯤 되면 이 공간의 이름이 왜 국자와 주걱인지도 궁금해진다. 김 대표의 강화도 이웃인 함민복 시인이 지어줬다고 한다. 여러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는 도구 ‘국자’와 ‘주걱’처럼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지식을 나누라는 의미라는데,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듯하다. 책방이 문도 잠기지 않은 채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의 편안한 휴식과 독서를 위해 김 대표는 일부러 이 공간에 잘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책을 구매할 때 종이에 적힌 계좌번호로 입금하면 그만이다. 덕분에 이곳은 책방이자 2개의 방을 갖춘 숙박 공간, 나아가 동네 사람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서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최근엔 전국에 훨씬 깨끗하고 예쁜 북스테이 공간이 많아서 이런 조용하고 불편한 시골에 누가 올까도 싶지만, 지금도 때가 되면 이곳에 와서 북스테이를 하고 가는 단골 손님이 있다. 책방 단골들은 전화해서 ‘이런 책 가져가요’ 할 때도 있고, 책방에 머물다가 손님을 마주치면 마치 주인처럼 손님들의 카드 결제를 대신 도와줄 때도 있을 정도”라고 웃었다. 이어 “이제는 책방이 엄청 많이 생기고 이곳이 친절한 공간도 아니지만, 꾸준히 국자와 주걱을 찾아와 일상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좋다. 마치 이 동네 공동체로 스며든 것 같다”라며 “무엇보다도 여기서 편하게 쉬고 간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지난 1일, 거실 한쪽에는 이곳을 방문한, 혹은 하루를 머물다 간 사람들이 붙여놓은 손글씨 쪽지들이 가득했다. 마치 방명록처럼 말이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덕분에 부담 없이 잘 쉬고 간다’는 후기가 대부분이었는데, 김 대표 덕분에 미처 몰랐던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넓히게 됐다는 등의 감사 인사도 많았다. 또 다른 벽에는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으며 상상한 장면을 스케치북에 그려 붙여놓은 것도 보였다. 어떤 이는 장문의 독후감을 써서 걸어두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정말 치유하고 간 것 같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김 대표는 “책방이든 북스테이든 단순히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계몽하겠다는 등의 큰 뜻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며 “지금까지도 이곳에 다녀가는 사람들이 이 공간을 좋아해주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마디씩 건네주는 말을 들으면서 ‘아, 내가 이런 마음으로 이 공간을 꾸몄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또 “책방을 하면서 소중한 사람을 많이 얻었다. 단골이 된 이웃은 물론, 귀한 인연을 많이 만나게 돼서 오히려 내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김 대표는 이 공간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으로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국자와 주걱은 지난해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이 인천지역 동네책방과 함께 진행한 ‘신바람 동네책방 책담회’가 열린 책방 중 하나로, 이미 이 동네 사람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는 도심을 벗어난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힐링 여행지로서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가 신규 선정한 ‘인천 웰니스 관광지’ 8곳에 들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제 겨울이 오면 국자와 주걱도 문을 연 지 10주년을 맞는다. 시골 구석이지만 이곳에서 공연도 하고 작가들이 와서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는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다”며 “내가 이 공간을 귀찮아하고 하기 싫다고 느끼면 금방 티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머물다 가는 ‘힐링 공간’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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