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맥주캔 집어던진 그네들
‘묻지마’ 살인도 횡행하는 세상에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라고 느껴져
법은 멀리있고 날것의 폭력 가까워
대명천지 세상, 다신 이런 일 없길
옛날에 서교동 경남예식장 뒤편의 뒤편 작은 골목에 살 때다. 합정역 로터리에서 동교동 로터리로 이어지는 직선대로는 늘 사람들로 붐비지만, 그 뒤편 골목 거리는 인적이 드문 곳도 있다. 밤 열 시나 되었을까? 그때,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어둡고 인적도 드물었지만 사람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평소에 불안을 느끼게 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저쪽 편에서 두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 둘이 거리를 걷는 일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내 시선은 무심결에 그네들을 향했다. 그때다. 갑자기 그들 중 한 ‘인간’이 나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그 캔은 아직 따지 않은 것이었다, 확, 집어 던졌다. 순간, 쓰고 있던 안경이 부서졌다. 묵직한 무서운 통증으로 눈을 뜰 수 없었다. 한쪽 눈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 인간들은 그런 내 옆으로 유유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쳐 갔다.
그때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있었다 해도 그 인간들의 폭력을 응징해 줄, 용기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한참만에야 정신이 났다. 그 ‘인간’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통증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그들이 사라져간 쪽으로 향했다. 그들의 행방을 쫓을 참이었다. 사실, 내가 주저앉아 있던 시간은 그렇게 한참은 아니었다. 통증의 깊이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네들은 무사태평으로 어느 편의점 안에 들어 있었다. 무조건, 일단, 따져 물어야 했다. 편의점 안으로 쳐들어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당황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그 둘 중 캔을 집어 던지지는 않았던 자가 내게 다가왔다. “너, 저 친구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몰라서 그래. 오늘 운 좋은 줄이나 알아.”
편의점을 빠져나가는 그네들의 걸음걸이는 아주 여유로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어리석었다.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휴대전화로 112를 찾았다.
얼마 안 있어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그들은 내 이야기를 건성건성 듣고 마는 것이었다. 두 경찰관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쉽지 않아요. 그냥 운수 사나운 날이라 생각하세요.” 그들은 범인들의 인상착의를 알려줄 CCTV조차 돌려보려 하지 않았다. 눈이 좀 붓기는 했어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 아니냐는 식이었다.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이제 내게 다른 대응 수단은 남아있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날 나는 확실히 운이 나쁘긴 했어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고 해야 한다. ‘묻지마’ 살인도 횡행하는 세상에, 그 정도로 끝났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만약 그네들의 손에 들린 것이 맥주캔이 아니고 다른 것이었다면? 그야말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가끔 그 일을 생각한다. 그날의 막막함을 떠올린다. 이 사회는 법이 버젓이 작동하는 듯해도 반드시 사각지대가 있다. 그 날의 큰 교훈이다.
어두운 곳, 외진 곳, 인적 드문 곳, 그런 곳에서 법은 멀리 있고 날것 그대로의 폭력은 가깝다. ‘내’ 바로 옆에 있다. 그런 곳에서 악한을 만나고, 사이코패스를 만나면,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이 폭력은, 개인들이 행하는 폭력 말고 ‘국가폭력’이라는 것도 있다. 국가나 그 권력기관이 법적·정치적 권한을 남용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 국가는 모든 권력보다도 더 우월한데, 이 국가가 부당한 힘을 행사해서 개인을 구속하고 다치게 한다면 그것처럼 무서운 일도, 부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때 국가는 가장 나쁜 악한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에, 군사독재 시절에, 그런 일이 많았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별일들이 다 벌어지곤 했다. 지금은 대명천지 세상, 그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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