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R&D까지 주 52시간 규제 꽁꽁
임금 향상 없는 주 4.5일제를 꿈꿔
실리콘밸리는 딴판, AI인재 쟁탈전
연구직 주 60~80시간 이상 다반사
상상 뛰어넘는 연봉은 정당한 보상
1986년 1월, 엑셀 1천50대는 울산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가성비’ 덕에 첫 해 수입차 판매 기록을 세운 엑셀은 한국 자동차의 야심찬 데뷔작이었다. 엑셀 돌풍은 이내 품질 문제로 이어져 ‘내려갈 줄만 아는 구루마’, ‘1회용 자동차’와 같은 혹평을 받지만 H사에겐 이후 비상(飛上)을 위한 쓴 약이 됐다.
당시 필자는 H사 연구소에서 차량용 램프 설계를 하고 있었다. 말이 설계지, 차량 설계도는 미쓰비시에서, 관리 사양(스펙)은 토요타에서 가져왔다. 업무는 설계도를 반투명 필름으로 뜬 다음, 조심스레 칼로 일본어를 긁어내고 그 자릴 한글로 채우는 거였다. 이 작업이 끝나면 암모니아 냄새 풀풀 풍기는 청사진으로 뽑아 생산현장과 협력사로 내보냈다.
근무? 주 7일. 그럼 언제 쉬냐고? 쉬긴 했다. 한 달에 딱 하루, 마지막 ‘일요일’. 오전 8시 출근·오후 9시 퇴근·일요일은 특별히(?) 오후 5시 퇴근. 밤 9시를 넘겨도 부서장이 퇴근 안 하면 직원들도 덩달아 사무실에 묶였다. 주 90시간쯤 일했으니 몸은 의자에 박힌 화석이었다. 지금 중국기업의 ‘996’(오전 9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이나 엔비디아의 ‘주 7일·새벽 1~2시까지 야근’에 비견될 만큼 치열하게 일했다. 996을 넘는 ‘897’이었다. 지난해 미국 판매량은 GM, 토요타, 포드, 현대차·기아 순이다. 이런 걸 ‘격세지감’이라 칭한다.
시간은 흘러 2024년,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천859시간으로 OECD 평균(1천719시간, 2022년)보다 155시간 많단다. 하나 이 수치만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건 섣부르다. 국내 전체 취업자의 23.5%(2022년)가 자영업자로 미국(6.3%), 독일(8.7%), 일본(9.6%) 대비 3~4배나 높다. 음식점은 인구 78명당 1개꼴로 존재한다(2017년). 여기에 시간제 근로가 적은 구조적 특성까지 더해지니 평균 근로시간이 높게 나오는 건 당연지사. 통계 착시다. OECD ‘Hours worked’에도 “국가별 자료 출처와 계산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경고한다.
한데 우린 이 착시에 근거해 R&D 연구직까지 ‘주 52시간’ 규제로 꽁꽁 묶고 노동생산성(OECD 38개국 중 33위)과 임금 향상 없는 주 4.5일(4일)제를 꿈꾼다. ‘노동시간 단축=선진국’이란 단순 공식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소상공인, 스타트업·벤처기업은 어쩌라고? 화살은 표적을 벗어나 이미 엉뚱한 쪽으로 날고 있다. 그래서 하는 제언인데 위정자(관계자)가 투자·운영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시범 적용해보면 어떨까?
한편 실리콘밸리는 딴판이다. AI 인재 쟁탈전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오픈AI, 애플, 구글 등 최고급 연구자를 빼오고자 무려 1억∼3억달러의 보상 패키지를 제안한다. 이들은 몇 시간 일할까? 전통적인 ‘9 to 5’와는 완전 별개다. 공식 근로시간이란 건 무의미하고 출퇴근 개념조차 없다. 연구직에게 주 60~80시간 이상은 다반사. 즉,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하다. ‘얼마나 탁월한 해결책을 내는가’가 모든 기준이고 슈퍼 인재 한 명이 수천 명의 레버리지를 창출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연봉은 문제 해결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인 셈이다.
“3:14 am gang.”
2023년 크리스마스 직전, 일론 머스크의 스타트업 xAI 개발 총괄 그레그 양(Greg Yang)이 새벽 3시14분 X에 남긴 글이다. 일은 이들에게 노동이 아닌 창조 과정이다. 자기효능감이 그들을 새벽까지 붙잡았다.(‘gang’은 특정 시각에 깨어있거나 그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 간의 소속감을 드러내는 인터넷 유행어)
한국은 어떤가? 포퓰리즘에 기초한 시간 중심의 사고와 규제 일변도뿐. 이래선 초격차 시대 인재를 육성도 유치도 불가하다. 인재 유출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국가 경쟁력을 떠올린다면 ‘몇 시간 일했나’가 아닌 ‘뭘 성취했나’를 물어야 옳다. 시계를 내려놓고 창의력과 몰입을 이끄는 유연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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