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서울 태생 일본인 작가가 쓴 단편 소설
해방 직후 한반도 거주 일본인들 심리 생생히 묘사
식민지에서 축적한 재산 일본으로 반출하려 안간힘
일본인들 밀항선 거점이었던 인천항으로 미군 진주
광복 80주년입니다. 8·15 해방을 우리와 다른 시선으로 다룬 단편 소설을 소개합니다.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난 일본인 베스트셀러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1930~1975)의 ‘밀항선’입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자수성가한 일본인 사업가가 1945년 8월15일 해방(일본인에겐 ‘패전’) 이후 그동안 축적한 재산이 묶이고, 더 나아가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인천항에서 밀항선을 구해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해방 직후 심리 묘사가 생생한 작품입니다. 해방일부터 9월 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사이의 ‘공백기’에 인천항이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반출하려는 밀항 통로였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 인천항을 통해 미군이 남한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죠.
주인공 오구리 기하치는 일본 본토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많은 빚을 진 채 변변치 않은 직장을 다니다 1923년 서울(경성)로 넘어왔습니다. 과거 사업에 실패하긴 했지만, 수완이 좋았던 기하치는 동대문 시장에서 과일을 떼다 파는 도·소매상으로 시작해 십수 대의 트럭을 거느리는 운송업으로 성공을 거둡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물자가 통제되는 와중에도 기하치는 각종 ‘로비’를 동원해 과일 등을 군납하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그는 장사꾼의 면모를 보이며 급기야 영등포 등지에 10만평 규모 토지를 사들여 글라이더를 일본군에 납품하는 군수공장까지 차립니다. 그때가 1944년 7월이었고, 그로부터 1년여 뒤 히로히토 일왕이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2차 세계대전은 종결됩니다.
기하치는 신당리(현 서울 신당동)에 저택을 짓고 살았는데, 이웃한 두 집과 ‘제6애국반’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몇 통 몇 반’할 때의 그 ‘반’입니다. 8·15 이후에야 처음 만난 이웃 두 집의 가장은 모두 기하치처럼 밑바닥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고위 관료와 군인이네요. 한반도에 남은 일본인들을 상대로 약탈과 폭력 행위가 이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기하치와 두 이웃은 총기로 무장해 ‘불침번’을 서가면서 신변과 재산 지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기하치에게도 소년 시절 자신의 과일 가게에서 일했던 이연이란 한국인이 청년이 돼 정치단체 간부 명함을 들고 찾아옵니다. 이연은 기하치에게 자신의 몸담은 정치단체에 재산을 기부하라고 은근히 강요합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이 치안 유지 등 사회 통제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은 100t급 이하 선박의 출항을 금지합니다. 기하치는 자신이 식민지에서 쌓은 막대한 재산을 일본으로 가져가지도 못하고, 자신의 가게 직원이었던 한국인과 정치단체 등에 몰수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기하치는 이연 쪽으로부터 ‘밀항선’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천항에 있는 97t급 범선에 각종 물품 등 재산을 숨겨 싣고 사흘 동안 시모노세키까지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사꾼 기질이 발휘된 기하치는 자신의 재산을 반출하는 것뿐 아니라 그 밀항선을 매입해 일본인들의 은닉 재산을 일본으로 빼돌리고 거액의 수수료를 받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합니다. 기하치는 묶여버린 영등포 10만평 땅과 낡은 밀항선을 맞바꾸는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의 재산과 이웃의 재산을 첫 배편에 부칩니다. 증권과 돈다발도 상자 바닥에 깔아 숨겼습니다. 배를 떠나보내며 기하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재산을 들고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물욕만은 강렬했다. 혼란 속에서 조금만 분발하면 영등포 공장의 손실도 순식간에 만회되리라는 생각에 기하치는 기운이 넘쳤다. (중략) 물때가 있으므로 곧 출항이었다. 인천항은 간조와 만조의 차이가 9미터나 돼 갑문식 축항이었다. 97톤의 춘금환은 소월미도의 등대 앞을 천천히 지나가 간조를 타고 놀라운 속도로 먼 바다로 나아갔다. ‘자, 다음 배 주문이나 받으러 갈까!’ 기하치는 빙그레 웃었다.”
조국의 패전도 사업 아이템으로 삼는 기하치.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하는 도중 군중이 노천시장을 열어 경매를 진행하는 광경을 마주칩니다. 일본 여성의 고급스러운 기모노를 입고 빙글빙글 돌면서 상품을 소개하는 한 남성. 그가 입고 있는 기모노는 기하치가 아내를 위해 교토에서 특별 주문한 하나뿐인 그 기모노가 분명했습니다. 경매는 이연이 속한 정치단체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기하치는 혼란에 빠집니다.
“아내의 기모노와 똑같은 물건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기모노는 춘금환으로 운반돼 지금쯤 하카타의 창고에서 자고 있을 터다…. 돈다발과 증권과 함께!” (소설 ‘밀항선’ 중에서)
기하치가 본 기모노는 그의 아내 것이 맞을까요. 기모노를 실은 상자 바닥에 깔린 돈다발과 증권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라고 기하치는 신음하듯 자신에게 묻습니다. 기하치는 그 물건이 어디서 났느냐 물으러 경매장에 들어가려 하지만, “일본인은 못 들어온다”는 주최 측에 가로막히며 소설은 끝납니다. 역전된 관계.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히 풍자적입니다. 해방 공간의 한 풍경입니다.
이 소설을 쓴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대표작은 제암리 학살사건을 다룬 단편 소설 ‘이조잔영’과 ‘족보’입니다. ‘이조잔영’은 1967년 신상옥 감독이 연출을 맡아 영화화됐습니다. 오영일과 문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족보’는 1978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식민지 시기 일본의 죄상을 솔직하게 밝히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일본 지식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식민지 조선에 대해 쓴 작품들을 엮은 소설집 ‘경성이여, 안녕’(리가서재·2021)에 ‘밀항선’ ‘이조잔영’ ‘족보’ 등이 모두 수록됐습니다.
다양한 시선으로 광복 80주년을 생각하고 싶은 독자들께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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