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라는 표현이 있다. 1950년대 멕시코만 석유 시추권 입찰에서 실제 매장량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업체들이 과도한 금액을 써내 낙찰받았다가 큰 손해를 입은 것에서 유래한다.
인천국제공항에 입점해 있는 신라·신세계면세점이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2023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낙찰받은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적자가 누적되면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당시 입찰에서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금액의 160% 이상을 써내 인천공항 면세점 특허권을 받았다. 이후 여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됐지만 면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관광객은 크게 줄면서 매출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20% 낮게 임대료를 설정해 제출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쟁에 나섰던 다른 업체들이 120~130% 금액을 써낸 것과 비교하면 낙찰받기 위해 과도한 금액을 제출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면세업계 회복 수요가 불투명했던 만큼,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적자 폭이 커지면서 신라·신세계면세점은 법원에 조정을 신청하는 등 임대료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 사례를 비교해보면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를 조정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8년 롯데면세점은 중국의 사드 보복 영향으로 매출이 급락하자 임대료 조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위약금을 내고 매장 일부를 철수한 바 있다.
관광객들의 소비 패턴 변화로 면세점들의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이 철수하더라도 다음에 입점한 업체들도 임대료 때문에 큰 부담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면세업계에선 임대료 산출 방식에 변화를 주고, 정부에서도 특허수수료 산정 기준 조정과 입국장 인도장 설치 등 면세점들을 위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주엽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kjy8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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