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담은 ‘채근담’
삶의 모든 순간 겸허하게 맞이하고
성실하게 꾸려감이 중요하다 말해
전직 대통령 부부로 깨달음 얻기도
격언 통해 아픔 느낀다면 정화될 것
격언과 속담은 곱씹을수록 가슴을 후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잊고 살았던 데 대한 회한일까. 때론 애써 부정하며 눈감았던 거다. 하지만 문득 자아에 거울을 들이밀면 마음 속 깊이 찌르르 아파오는 거다.
채근담은 삶의 지혜를 담았다고 한다. 사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채근(菜根)은 나물 뿌리라는 뜻이다. ‘나물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세상만사를 다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삶이 이만하면 어떠냐”라는 호기도 여기서 나왔을까. 정의와 거리가 먼 부귀영화는 뜬구름 같다는 깨달음이겠다. 물론 하루하루 삶에 쫓기는 서민들에게 호의호식은 소박한 꿈일 수 있겠다. 분에 넘치는 영화가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좇는 허상이겠고. 그래도 솔로몬의 말처럼 모든 부귀가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고 하지 않던가. 눈과 코, 귀와 입의 즐거움이 다 부질없다는 거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미지의 내일을 오늘로 맞아야 한다. 채근담은 ‘역경(逆境)을 겪어내고 순경(順境)을 견뎌내라’고 한다. 어려움에 처해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만사가 술술 풀릴 때 나태하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거다. 삶의 여정에는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는 인생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삶의 모든 순간을 겸허하게 맞이하고 성실하게 꾸려 감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호화로운 궁전에서 하루아침에 철창 신세로 전락한 전직 대통령 부부가 있다. 재갈 물리지 않은 야생마는 낙상을 부르고 브레이크 없는 벤츠의 끝은 파멸이 아니겠나. 대호(大虎) 프로젝트를 말하지만 호랑이 등에 탄 신세 아니겠나.
명심보감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으로 시작한다. 선을 행하며 덕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후손이 복을 누린다는 거다. 반대로 악업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이 재앙을 당한다고 경고한다. 아마도 작자는 사마천이 사기(史記)에서 토로한 무심한 하늘의 뜻을 갈무리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질고 착한 백이는 일찍 굶어 죽고, 포악한 살인강도단 두목 도척은 천수를 누리니 “과연 천도(天道)는 옳으냐 그르냐” 고통스런 독백 말이다. 그래서 선이나 악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집안’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다고 경계한 거다. 이제는 다르다. 전광석화처럼 변하는 시대이다. 옛날의 100년은 지금의 10년보다 짧다. 그래서 후대가 아니라 당대에 복도 화도 맞닥뜨리는 거다.
길흉화복에 연좌제는 없다. 명심보감도 ‘적불선지가 필유여화(積不善之家 必有餘禍)’가 아니라 ‘적불선지인(積不善之人)’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나. 더불어 “후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교만도 “당대 민중이 심판할 것”이라는 겸허함으로 대체해야 한다. 사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을 알지만 사람들은 작은 악(惡)에 무덤덤한 듯하다. 떡잎부터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무지인가 무심인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국민)을 배신할 것을 알아채야 했나.
명심보감 존심(存心)편은 말한다. ‘사람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착한 생각을 품으면 세상이 모두 선해 보이고, 나쁜 생각을 품으면 세상이 모두 악해 보인다’는 거다. 이를 실천하면 비명횡사(非明橫死)가 아니라 보통 시민들이 감동하는 명심보감(明心普感) 정치가 되겠다.
격언과 속담은 한편으론 진정 슬프다. 시공을 초월해 생명력을 가진다는 점이 그렇다. 얼마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수천년 전 가르침이 오늘에도 유효할까. 나물뿌리보다 나은 관식을 먹는 신세라면 스스로 세 거울을 들여다 보라. 당나라 태종의 거울 말이다. 구리 거울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역사 거울은 흥망을 알게 하며, 사람 거울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한다고 했다. 비록 슬픈 격언과 속담이지만 진정 아픔을 느낀다면, 깊은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면 그때야 비로소 정화(淨化)될 것이다. 그게 진정 죗값을 치르는 길이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이사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경인일보 Copyright ⓒ 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