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 인천 살다 귀국 일본인들 회고록

많은 조선인들 이미 일본 패망 예상 증언

한국 아이들, 미군 폭격기 선회할때 환호

미군정 초기 사회상도 여과 없이 드러내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일본에 ‘인천을 생각하는 모임’(仁川を想う)이 있다. 인천 출신 재일한국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해방 전 인천에 살았다가 귀국한 일본인들의 모임이다. 일본 인천회 회원들의 인천 방문 소식을 언론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눈여겨 보지는 않았다. 우연히 이 모임의 홈페이지에 남긴 ‘귀환자’들의 인천 회고록들을 읽어 보게 되었다. 이들의 회고담에는 기존의 ‘재조일본인’들과는 사뭇 다른 인천 체험기들이 많았다.

부평의 한 초등학교에 다녔던 일본인은 많은 조선인들은 이미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 개전한다는 뉴스를 듣고 흥분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벽돌공장에 가서 들뜬 목소리로 전했을 때, 한 한국인 관리인은 “일본은 미국에게 이길 수 없다”고 말한 일을 뚜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당시에 학교에서 배운대로 ‘일본은 신국(神國)이니까!’ 반드시 이긴다고 반발했지만, 나중 상당수의 조선인들은 일본의 패망과 조선의 해방을 예측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회고담이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야 한국인들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일본의 패망이 확인되자 갑자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이 손에 쥔 태극기는 새로 만든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것을 꺼낸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인들이 마음속으로 일본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런 충격은 기만적인 ‘내선일체’ 정책 때문이다. 한 증언자는 천황의 항복선언 후에 학교에서 일하던 급사가 “일본은 졌고 조선은 이겼다”고 소리치자 일본이 졌으면 조선도 함께 져야하는데 조선이 이겼다고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한다. 또 미군 폭격기가 선회 비행할 때마다 일본 아이들과 달리 한국 아이들은 ‘비행기 노래’까지 지어 부르며 환호했다고 한다.

이 회고록들은 미군정 초기의 사회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당시 신흥초등학교의 전신인 아사히학교 학생이었던 한 일본 지식인은 인천에 진주한 미군들이 일본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른 여러 건의 성폭행 범죄에 대한 증언을 구체적으로 남겼다. 당시 인천부윤이 나서서 성폭행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미군 전용 ‘공설위안소’를 설치하고 동네 단위로 일본 부녀자들을 뽑아 성욕의 제물로 삼은 범죄행위도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패전 후 일본인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인 여성이나 어린이들에게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 일본인은 “인천을 출발한 귀환열차가 용산 조차장에 정차했을 때 한밤중 술취한 미군병사들이 여기저기 객실문을 두드렸을 때”가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2만여 명의 인천 일본인이 귀환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 인천인양지(仁川引揚誌·1952)인데 일본귀환 조직의 대표 고타니 마스지로가 편찬했다. 인천거주 일본인들이 ‘세화회’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한 내용과 일본 귀환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귀환’이나 ‘철수’가 아닌 ‘인양’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그 기록에는 ‘패전’이나 ‘항복’ 같은 단어가 없다. 패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미군정에 대한 기록은 우호적이지만 한국인에 대한 기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인천생각모임’의 인천회고는 어린이의 시점으로 쓴 성장서사를 닮았다. 어린이의 시점이 가진 제약도 있고 일본인들의 평균적 의식이라 하기도 어렵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또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 처리 문제로 한국과 충돌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 유년의 시선으로 묘사된 인천 회고록은 우리가 모르는 조선과 인천의 모습을 비추어 준다. 해방은 느닷없이 온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한국인들과 아이들도 일본의 패망을 믿고 조선의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동안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