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자리잡은 곳에 ‘궁골주택’
개성 옛 이름 ‘송악’ 붙은 곳 흔해
고려의 수도·물에서 찾은 도읍 뜻
대기업 성장 ‘심도직물’ 옛 굴뚝도
인천 강화에서는 유적지 이외에도 거리 곳곳에서 고려를 느낄 수 있다. 강화읍내 상점을 비롯한 건물 외벽에 붙은 간판들에서 800년 세월을 스며든 고려의 향기가 묻어난다.
주택가 한복판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수십 년 전 건축된 다세대주택의 이름에서부터 고려향이 가득하다. 궁골주택. ‘이곳이 바로 고려의 궁궐이 있던 자리구나’ 하고 대번에 알게 하는 이름이다. 강화군에 따르면, 궁골주택은 강화읍 관청길 55번길, 65번길 일대의 4개 동 31세대 규모를 이루고 있다. 동별로 1990년 4월~1991년 11월에 각각 준공되었다. 30년이 훌쩍 넘은 궁골주택 주변에 들어선 최신 다세대주택들도 고려 수도였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붙어 있다. ‘송악00집’, ‘송악000캐슬’, ‘고려000’ 등이다. 송악(松嶽)은 개성의 옛 이름이고, 송악산은 개성의 북쪽 산이면서 강화읍의 북산이기도 하다.
궁골은 이 동네 이름인데 궁곡(宮谷)이라고도 불린다.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직후 이곳에 개성의 것을 본뜬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이 자리가 궁궐의 주요 전각들이 있던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어 온다고 지명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최근에는 궁골주택 인근 강화도서관 옆 도로공사 중 고려시대 건물의 기둥 받침인 적심이 죽 늘어선 건물 터가 발굴되기도 했다.
강화를 고려의 수도라는 의미에서 강도(江都)라고 칭하는데, 같은 뜻으로 심도(沁都)가 있다. 강도와 심도가 고려 천도 시기 강화도를 가리키는 같은 말이라는 얘기는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저술한 ‘강도지(江都志)’에 실려 있다.
이형상은 ‘강도지’에서 강화의 연혁을 설명하면서,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 군사를 피하여 이 도(都)에 들어와서 군호(郡號)를 승격시켜 강도(江都)라고 일컬었다. 한편으로는 심주(沁州)라 이르기도 하고 또는 심도(沁都)라 칭하기도 한다”고 썼다.
고려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이후 강화를 강도(江都) 또는 심주(沁州), 혹은 심도(沁都)로 높여 불렀다는 얘기다. 심도는 한자 뜻을 그대로 옮기자면 ‘물에서 찾은 도읍’이다. 요샛말로 치면 수상도시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심도를 상호로 사용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있었다. 심도직물. 이 회사는 1960~70년대 강화의 직물산업 황금기를 대표하는 기업체 중 하나였다. 현재의 용흥궁공원 일대가 심도직물 터다. 그 흔적은 용흥궁공원 주차장 앞에 ‘김상용 순절비’와 나란히 서 있는 옛 심도직물 굴뚝에서 찾을 수 있다. 심도직물은 1947년 설립, 2005년까지 운영했다. 설립자는 김재소 전 국회의원이다.
심도라는 이름을 쓰는 회사가 지금도 있다. 강화에는 도시가스 기반시설이 부족해 아직 LPG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따라서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화물차량에 LPG통을 싣고 다니는 장면을 강화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다. 가정집이나 식당 등에 가스를 배달해 주는 회사 이름이 ‘심도00’다. 가스 회사 이외에도 ‘심도00’라는 주류도매상도 있다.
이밖에도 한약방의 이름에 개성을 붙여 ‘개성000’이라고 했다든지, 건축 사무소나 미용실 이름에 ‘고려’를 앞세운 곳도 있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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