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기반 김진초 작가의 11번째 소설집

 

참아야 하는 담배·노견과의 추억

성장을 위한 안전장치이자 마침표

13명 독자가 남긴 감상도 흥미로워

“살기 위해 끊어야할것, 13첩 차려”

■ 나무 남자┃김진초 지음. 미소 펴냄. 400쪽. 1만8천원

월미산과 인천대공원을 찾았다가 나무 옆에서 우연히 그것도 여러 번 마주친 낯선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가 있다.

가족에게 헌신하며 연애조차 잊었던 여자에게 다가온 남자는 베트남의 사막 100만평 부지에 대규모 은행나무 숲을 조성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여자는 베트남에 있는 남자에게 돈까지 빌려줬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긴다. 남자가 보여준 은행나무 숲이나 베트남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을까.

김진초 작가의 단편 소설 ‘나무 남자’는 이성적 호감을 가장한 사기 수법인 ‘로맨스 스캠’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족 가스라이팅으로 장착된 ‘고독한 불신’이 여자의 불안을 가중하게 한다. 다행히 반전은 있다. 여자는 그 고독한 불신과의 ‘떨켜’를 만들어 내면서 사기극 같던 소설의 분위기를 연애담으로 바꿔 놓는다.

떨켜는 낙엽이 질 때쯤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부분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이다. 가을이 오면 잎으로 가는 영양을 차단해 낙엽을 떨어뜨리며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 떨켜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마련된 안전장치다. 작별을 위한 마침표이기도 하다.

인천을 기반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진초 작가의 11번째 소설집 ‘나무 남자’는 세상의 다양한 떨켜에 관한 13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표제작 ‘나무 남자’처럼 작가는 작품 곳곳에 떨켜를 숨겨뒀다.

그 떨켜를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편 ‘너를 찾는다’는 죽을 때까지 참아야 하는 담배와의 떨켜다. ‘말승냥이 시절’은 말기암 환자의 19살 망나니 시절과의 떨켜를, ‘150그램’은 15년 동안 동고동락한 노견과의 떨켜를 그렸다. 가정 폭력에 대한 오래된 슬픔과의 떨켜 ‘하리라 스프’, 기생충과의 떨켜 ‘이를 박멸하는 최고의 방법’, 효자 아들이 빠진 딜레마에 관한 떨켜 ‘혼돈을 빚다’ 등 갖가지 이야기에서 작가는 “버려야 할 때 버리지 않으면 내가 스러진다”며 떨켜를 만드는 이유를 찾는다.

작가가 13편의 소설을 각각 13명의 일반 독자에게 먼저 읽게 한 후 감상문을 받아 수록한 ‘13인의 독법’도 흥미로운 기획이다.

‘나무 남자’를 읽은 이근복은 “대학 신입생 때 낡은 봉고차에 올라 사기당하던 시절이 소환돼 가슴 졸였다”고 고백하고, ‘150그램’을 읽은 정현정은 “슬픔은 일직선이 아니라 작은 순간과 갑작스러운 기억 속에서 움직인다”고 했다.

‘이를 박멸하는 최고의 방법’을 읽은 박형익은 “모녀의 기생 관계, 부부의 기생관계를 보며 누가 기생충이고 누가 숙주인지 헛갈려 하다가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박멸돼야 할 기생충은 아닌지 돌아본다”는 재치 있는 감상을 썼다.

작가는 “살기 위해 끊어내야 하는 괴로움, 아쉬움, 죄의식 등을 13첩 반상으로 차려냈다”며 “쓰고 짜고 달고 시고 매운 맛으로 오감을 즐기면서 나의 떨켜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떨켜 :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가 붙은 곳에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