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 막일

폭우 쏟아져 구덩이서 온종일 고생

야외나 다름 없었던 쿠팡 물류센터

쉴틈 없는 노동강도에 사망 소식도

더위 속 고공농성 노동자 기억해야

이원석 시인
이원석 시인

여름을 좋아한다. 애초에 타고나길 더위를 덜 타는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유년기의 아름다운 순간은 대부분 여름방학이라는 마법 같은 시간과 함께였기에 여름을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 시골 평상에 누워 올려다보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라든가 풀벌레 울음소리 가득한 논둑길을 걷던 여름 수련회의 기억, 태어나서 처음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했던 해운대 해수욕장에서의 여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사촌 형들이 어린 동생들을 깜짝 놀래켜 주기 위해 문방구에서 사온 다양한 종류의 불꽃놀이 폭죽들도 생각난다. 불을 붙여 불꽃이 튀기 시작하면 손에 들고 빙빙 돌리던 막대불꽃놀이와 바닥에 놓고 불을 붙이면 작은 통 속에서 불꽃이 분수처럼 나오던 것도 있었다. 손바닥만큼 작은 러닝셔츠와 팬티만을 입고 돗자리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밀린 방학 숙제를 하던 기억도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운 여름의 추억이라고 할 만하다. 그 시절 야쿠르트 배달을 하시던 어머니는 살구색 긴팔 옷을 입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여름날의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살이 몇 킬로그램씩 빠져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때 난 더위를 몰랐다. 무더위라고 해도 선풍기 앞에 머리를 가져다대고 소리를 내보고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수박 화채를 먹고 낮잠을 자면 하루가 후딱 가버리곤 했다.

고등학생 시절의 여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학교 동아리로 활동했던 풍물패의 기억이다. 그늘도 없는 학교 뒷산의 공터에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여름 햇살을 모두 내려받으며 악기를 두들겼다. 교복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쇠와 가죽을 두드리는 타악기 소리는 여름의 데워진 공기를 뚫고 멀리 날아갔다. 산에 사는 검은색 모기는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있는 우리를 마음껏 공격했다. 긴바지를 입었지만 교복 바지를 뚫고 물었으며 꽹과리 장구를 두들기느라 손을 바쁘게 놀렸지만 움직이는 손을 따라다니며 물었다. 한번 물리면 벌에 쏘인 듯이 크게 부어올랐다. 손톱으로 상처에 십자가 모양을 내고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면 그만인 더위였다. 반소매 티셔츠를 맞춰 입고 여름방학 때 월미도에서 야외공연도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때 폭력교사 퇴출과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유기정학을 맞은 후 자퇴했다.

성인이 되고 떠오르는 여름은 청라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의 여름이다. 일당벌이를 하러 아파트를 짓는 현장에 막일을 하러 갔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서 기초공사만 해놓은 현장에 물이 들어찼다. 물을 빼내느라 허리까지 잠기는 구덩이에 들어가 하루종일 고생을 했다. 옷이 쫄딱 젖은 채로 집에 가야 했고 오늘은 일당을 좀더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부당했다.

몇해 전 쿠팡에서의 여름도 떠오른다. 물류센터 건물의 엄청난 크기에도 놀랐고 그곳을 오가는 엄청난 양의 택배 화물에도 놀랐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노동강도에도 놀랐다. 일당을 많이 준다는 구인광고에 심야조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구인광고에 적혀있는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일당이 배당되어 있었다.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을 했다. 화물트럭이 수없이 오가는 열린 공간이었고 지붕만 있었지 야외나 다름 없었다. 냉방장치도 선풍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는 뜨거웠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춰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일이 손에 익어 손이 좀 놀면 반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컨베이어 벨트에 물건을 더 많이 쏟아서 작업량을 늘렸다. 밤새 단 30분만 쉴 수 있었다. 뉴스에선 계속 일하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이 한국의 기온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도 이상기후라고 할 만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지금도 구미의 한 공장 옥상에서는, 한낮의 온도가 50도를 넘는 불지옥 콘크리트 위에서 590일 넘게 고용승계를 외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

/이원석 시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